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동맹은 ‘힘’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이익’과 ‘정체성’으로 지속된다. 한미동맹도 예외가 아니다. 6·25전쟁 직후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동맹이지만,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는 배경에는 안보와 경제를 아우르는 국가이익과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하는 정체성이 자리 잡고 있다. 다만, 호혜적 의존으로 변화하는 동맹의 진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낡은 사고가 여전하다.

과거 북한 위협에 홀로 대응할 능력이 없던 우리는 동맹인 미국의 힘을 빌려 생존의 기반을 닦았다. 큰 틀에서 보면 이승만·박정희 시대는 미국에 안보의 일차적 책임을 맡기고, 우리는 경제에 ‘올인’하는 편승 전략의 시기였다. 작전통제권이든 월남전 파병이든 명분상 아쉬움이 왜 없었을까만, 그 시대에는 그 선택이 곧 ‘실용’이었다. ‘한강의 기적’은 절대 그저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의 경제력이 북한을 앞서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동맹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북한 경제는 피폐해졌고, 재래식 군사력의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탈냉전 이후에는 남북 간 대화와 공존이 종속적인 동맹보다 낫다는 ‘자주’적 사고가 등장한다. 이러한 인식은 시민운동을 통해 급속히 퍼져 나가면서 2000년대 초 최고점에 이르렀다.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파동은 그냥 생긴 일이 아니다.

최근의 동맹 환경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양자관계는 호혜성이 강조되고 있고, 지역적으로는 한반도를 넘어 글로벌 협력을 지향하고 있다. 동시에 안보와 경제가 맞물리며 북한의 위협에 대한 주도적 책임과 중국의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대미 무역 흑자 유지와 대미 투자 및 비관세장벽 문제 등이 상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제경제 환경도 급변하면서 미국이 다시 우리의 주요 수출시장이 됐고, 미국이 중국 첨단산업을 견제하면서 우리 첨단산업의 숨통이 트이게 됐다. 최근의 반도체 특수는 그냥 찾아온 것이 아니다.

이미 한미동맹은 올리버 윌리엄슨 교수가 ‘거래비용 경제학’에서 언급한 ‘자산 특수성’(Asset Specificity)과 그로 인한 ‘쌍방 의존성’(Bilateral Dependency) 효과가 고착돼 있다. 70여 년간 유지해 온 관계로 인해 동맹 이외의 선택을 할 경우, 그 가치가 현저히 하락한다. 북핵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핵 억제의 대안이 없고, 중국과 산업 생산성의 초격차를 유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을 대체할 시장도 없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쌍방 의존성인데, 국력 상승으로 인해 미국도 우리에게 의존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스타일이 달라 보이는 이재명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간의 협력이 가능한 이유다.

현재 한미동맹이 당면한 문제들은 국익을 둘러싼 슈퍼컴퓨터급의 계산이 필요한 복합적인 사안이다. 자주파나 동맹파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로는 풀 수 없는 난제(難題)다. 특히 과거의 자주적 사고로 오늘의 동맹 문제에 접근한다면 곤란하다. 명분 못지않게 실리를 얻어야 할진대, 북한·북핵 문제, 전시 작전통제권, 전략적 유연성, 무역 협상 등에서 명분에 집착해 실리를 포기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안보는 위협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도록, 경제는 이익 구조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것이 곧 실용의 길이다.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기사 추천

  • 추천해요 1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