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00년대 초 핀란드를 자주 방문했다. 한국 사회에서 ‘강소국(强小國)에서 배우자’는 열풍이 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거시 경제를 담당하던 필자가 핀란드 경제학자들을 만나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핀란드 경제가 노키아라는 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데, 어떻게 리스크(위험)를 관리하고 있는가?”였다. 당시 노키아는 헬싱키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전체 주식 시가총액의 약 65%, 기업 연구·개발(R&D) 투자비의 47%, 수출의 18%를 각각 차지하고 있었다. 그 뒤 핀란드 경제는 2014년 노키아가 스마트폰 확산에 적응하지 못해 휴대전화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지금까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올해 1분기 전기 대비 1.7%(속보치)의 ‘깜짝 성장’을 했다. 올해 2월 한국은행이 내놓은 전망치가 0.9%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얼마나 높은 성장률인지 가늠할 수 있다. 올해 1분기 한국 경제의 깜짝 성장은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품목을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올해 1분기 성장률 1.7%를 분해하면, 순수출의 성장 기여도가 1.1%포인트로 내수의 성장 기여도(0.6%포인트)보다 훨씬 높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오자 해외투자은행(IB)도 앞다퉈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를 높이고 있다. 한국의 1분기 성장률이 국제 사회에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또 있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세계 경제 성장률이 하향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 해외에서 석유를 거의 전량 수입하는 한국이 예상치 못한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1월 3.3%에서 4월에는 3.1%로 낮췄다. 올해 1분기 한국 경제가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가장 큰 이유는 인공지능(AI) 인프라 확장에 따라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가치 반도체 제품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글로벌 표준’을 이끌고 있다는 데 있다. 한국 경제에 중동 전쟁으로 인한 악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AI 인프라 확장과 맞물린 반도체 호황과 한국 기업의 초혁신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지위를 차지하면서 전쟁이라는 악재를 호재로 누른 결과라는 뜻이다.
인구가 5000만 명 넘는 우리나라를 인구 500만 명 조금 넘는 핀란드와 비교하거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를 노키아와 비교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증권가에서 내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합계액이 900조 원 안팎을 기록, 우리나라 한 해 국가 예산(2026년 총지출 기준, 727조9000억 원)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만큼 현재 한국 반도체 기업의 위상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핀란드 사례처럼 국가가 한 가지 업종이나 특정 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언젠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이 전례를 찾기 어려운 호황을 맞고 있는 이때 한국의 미래를 이끌 제2, 제3의 먹거리 산업이 나올 수 있도록 정부가 종합적인 지원책을 내놓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