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이의 올댓클래식 - 코플런드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
군인·민간인 구분없는 총력전
여성도 동원 ‘보통 사람 전쟁’
단순하고 쉬운 멜로디와 화성
‘평범한 당신이 세상 중심’ 선언
내일은 노동절이다. 5월 1일은 오랫동안 ‘근로자의 날’로 불렸으나, 지난해 11월 법률 개정을 통해 ‘노동절’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금년부터 메이데이가 공휴일로 지정되며 온 국민이 함께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빨간 날이 하루 더 늘어났다는 뜻이 아니다. 사회 전체가 노동의 가치를 기념하게 된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 공무원과 교사 직종까지 포함해 전 국민이 이날의 주인공이 됐다. 이번 휴일 지정을 통해 노동절은 사회를 묵묵히 떠받쳐 온 사람들이 전부 호명되는 날이 된 셈이다.
뜻깊은 날을 맞아 떠오르는 곡이 있다. 미국 작곡가 에런 코플런드(사진)의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Fanfare for the Common Man)’. 이는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한복판에서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유진 구센스의 의뢰로 작곡되었다.
요청은 전시에 사기를 고취할 짧은 애국적 팡파르를 써 달라는 것이었다. 코플런드는 주문에 충실히 응답했지만, 헌정 대상은 국가 원수나 장군, 군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었다. 훗날 이 작품은 미 대통령 취임식이나 의전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지만 말이다. 당시 미국 정계에서는 헨리 A 월리스 부통령이 “보통 사람의 세기(Century of the Common Man)”를 말하고 있었는데, 코플런드의 제목은 시대 기류를 정확히 포착한 명명이었다. 2차 세계대전은 군인과 민간인 구분 없이 국력을 쏟아부은 유례없는 총력전이었고, 여성들도 군수공장과 생산 현장으로 활발히 진출했다. 전선은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근로의 주체는 대폭 확장되었다. 명실공히 ‘보통 사람’들의 전쟁이었다.
1943년 3월 12일 초연된 음악은 짧지만 압도적이다. 트럼펫과 트롬본 세 대, 호른 네 대, 튜바와 팀파니, 베이스 드럼, 징 계열의 악기 탐탐(tam-tam)으로 이루어진 편성은 강력하면서도 장엄한 인상을 준다. 타악기의 느리고 무거운 공명으로 시작해 트럼펫이 첫 선율을 마치 선포하듯 불면, 호른과 트롬본, 튜바가 차례로 합류한다. 도입부는 서두르지 않는다. 음과 소절 사이 여백을 의도적으로 배치해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쳐 온 사람들, 무명의 존재들을 차례대로 이름 지어 부르는 듯하다. 효과는 마치 거대한 기념비들이 침묵 속에서 하나씩 세워지는 것 같다.
작품의 호소력은 여기에 있다. 멜로디가 특별히 복잡한 것도, 화성이 난해한 것도 아니다. 반복되는 금관악기의 외침은 가사는 없지만 곡명과 함께 하나의 공표처럼 들린다. 평범한 당신이야말로 세상의 중심이라는 선언. 노동절에 이 곡이 각별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인간 자체의 존엄과 가치, 힘든 일과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의 숭고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팡파르라는 장르 자체도 그렇다. 본래 왕의 입장이나 개선, 축전 행사를 알리던 형식이지만 작곡가는 이를 시민들에게 바쳤다. 따라서 곡은 장중하지만 위압적이지 않고, 고양되지만 들뜨지 않는다. 이 작품이 ‘슈퍼맨’ ‘라이언 일병 구하기’ ‘패트리어트’ 등 수많은 영화 음악의 모티프가 되거나 OST에 영감을 준 것은 우연이 아닌 듯싶다.
내일 우리는 쉰다. 그러나 노동절의 진정한 의의는 휴식에 있지 않다. 누가 사회를 움직여 왔는지, 누가 고된 노동으로 일상을 이끌어 왔는지 질문하는 것에 있다. 코플런드의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는 그 답변을 들려준다. 거창한 위인이 아니라, 매일의 세계를 힘겹게 유지하고 지탱해 온 수많은 이들. 올해 처음 모두의 공휴일이 된 노동절 전야. 우리가 듣는 팡파르는 그런 ‘보통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음악 칼럼니스트 ‘음악과 이미지’ 저자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