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29일 김범석 쿠팡Inc 의장을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했다. 동생 김유석 씨가 최상위 대우를 받고 등기임원 수준의 영향력을 행사한 게 사실이라면 이해할 만한 조치다. 앞으로 김 의장은 공시 확대 등 법적 의무가 늘어나게 됐다. 쿠팡은 “행정소송을 통해 소명하겠다”며 반발하지만, 다시 ‘법인 동일인’ 지위를 회복하려면 김유석 씨를 경영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게 우선이다.
40년 전 도입된 대기업 집단 동일인 제도는 갈라파고스식 규제의 전형이다. 처음에는 ‘6촌 이내’였다가 ‘4촌 이내’로 바뀌었고, 외국에서 동일인을 ‘Chaebol head’로 번역할 만큼 한국에만 있는 기형적 규제다. 과거에는 ‘제왕적 총수’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툭하면 형사처벌을 받을 만큼 세상이 바뀌었다. 선진국들은 가족 범위를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으로 한정한다. “얼굴도 모르는 친척들 주식 소유까지 보고해야 하느냐”는 성토도 나온다. 이번 동일인 지정이 현행 법규를 충족하더라도 찜찜한 이유다.
쿠팡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의 최혜국 대우 조항을 위반한 “차별적 대우”라며 반발한다. 에쓰오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와 사우디 왕실이 실질적 지배자이지만, 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돼 있다. 미국 GM 본사가 대주주인 한국지엠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개인 중심’에서 ‘법인 중심’ 규제로 가는 흐름과도 배치된다. 경제적 징벌 대신 형사처벌 쪽으로 역행하는 것도 문제다. 외국기업이 자료 제출 누락 등으로 형사처벌 받을 위험에 노출된다면 한국 기업 인수를 꺼릴 수밖에 없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쿠팡 문제가 한미 안보 협의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양국 갈등에 공정위까지 가세한 셈이 됐다. 쿠팡 문제가 한미 간의 불필요한 갈등 요인으로 비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차제에 동일인 지정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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