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아 정치부 차장
한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라고 했다.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재·보궐 선거 공천을 위한 의원들의 ‘릴레이 지지 선언’에 대한 쓴소리였다. ‘이재명의 최측근’이라는 그를 지지한다는 ‘배지’가 60명을 넘겼다. 김 전 부원장은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1·2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대법원 재판 중 지난해 8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유례없는 노골적인 ‘보석 공천’ 요구였다.
김 전 부원장은 “경기 지역 출마를 희망한다”고 하더니, 지도부 내에서 ‘불가론’이 나온 뒤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예 경기 안산갑과 하남갑을 콕 찍기도 했다. 안산갑은 양문석 전 민주당 의원의 지역구로, 그가 ‘대출 사기’ 혐의로 대법원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받으면서 보궐선거가 열리게 된 곳이다. 본인의 귀책사유로 지역 주민들은 2년 만에 선거를 또 치르게 됐는데, 양 전 의원은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김 전 부원장에게 “안산갑 지역위원장을 맡아주시길 간절히 바란다”며 ‘러브콜’을 보냈다. 안산 지역은 경기 내에서도 민주당 세가 강한 곳으로 꼽힌다. 본인도 ‘사법 리스크’를 안은 채 제22대 총선에서 당선됐으니, 그 역시 무난하게 당선될 것이란 자신감인 걸까. 부끄러움을 찾기 어려운 오만이다.
당내서는 소속 의원 40%가량이 김 전 부원장의 공천을 촉구한 것을 놓고 ‘1∼2년 뒤 출마를 위한 띄워주기’라는 해석이 나왔다. 여기에는 차기 국회의장 후보군, 차기 최고위원 후보군을 비롯해 이른바 강성 당원 여론을 대변하는 강경파 의원들이 포함돼 있다. 친명(친이재명)계, 당권파를 망라한다. 일각에서는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판사 압박용’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초유의 대법원장 청문회를 겪으면서 거대 여당의 효능감을 만끽했으니,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을지도. 속내가 어느 쪽이든, 눈물겨운 그들만의 연대이자 국민 기만이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2024년 6월 민주당의 귀책사유로 재·보궐 선거가 발생했을 때 후보를 내지 않도록 하는 ‘무공천 규정’을 당헌·당규에서 삭제했다. 이 규정은 2015년 당시 문재인 대표가 정치 개혁의 일환으로 도입했던 건데, ‘선거 승리’를 명분으로 과거로 돌아간 것이다. 그로부터 2년 뒤,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 귀책사유로 재보선이 치러지는 곳은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제로(0)에 가까운 안산갑과 전북 군산·김제·부안갑이다. 민주당 지도부 그 누구도 두 지역 주민들에게 공개 사과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몸을 낮추지 않아도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최근 부쩍 겸손을 강조하고 있다. 다 이길 것처럼 오만하게 굴었다간 국민의힘에 실망해 투표를 포기하려 했던 보수층이 결집할 것이란 우려에서란다. 아니다. 어차피 이길 선거라며 투표장에 가지 않을 지지자들의 이완을 걱정하는 것이다. 진짜 몸을 낮추려 했다면, 지방선거를 한 달 앞두고 이재명 대통령 사건을 공소취소할 수 있는 특별검사를 추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젠 지지층 아닌 유권자의 눈치는 보는 ‘척’도 안 하겠단 것인가.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1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