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윤수일 ‘제2의 고향’
어느 순간 화면에서(기억에서) 사라지는 가수가 적지 않다. “저는 평생 노래하고 싶습니다.” 눈빛 총명한 젊은 가수의 미래에 찬물을 끼얹을 순 없다. 이렇게(무정하게) 말이다. “부르고 싶을 때 혼자 목청껏 부르면 되잖아요. 산에서 들에서 때론 노래방에서.”
들으면 무척 서운할(괘씸할) 것이다. 그래서 실용적인 조언으로 바꾼다.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면 대중이 먼저 당신을 부르게 해야죠.” 그제야 신인은 기운을 회복하고 스스로 다짐한다. “그러려면 매일매일 연습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이럴 땐 격려보다 확률에 근거한 지침이 요긴하다. “연습은 기본이고 자신만의 오리지널 히트곡이 최소한 한 곡, 바람직하기로는 3곡 이상 나오도록 최선을 다하세요.”
누군들 모르랴.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으랴. 어느 분야건 잘하는 사람은 많아도 잘되는 사람은 적다. 음악동네도 마찬가지다. 레퍼토리는 많아도 변변한 히트곡 하나 없는 가수가 부지기수다. 그들은 묻는다. 도대체 히트곡의 기준이 뭐냐. 발표한 지 10년이 지나도 음악애호가들이 기억하는 노래라면 곡의 생명력을 인정한다. 그 노래가 히트할 때 청소년이었던 사람들이 중장년이 되어서도 합창할 수 있는 노래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 어떤 계기로 다시 활활 타오른다면 그건 명곡의 반열에 올려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구축한 아파트가 윤수일(사진)을 살린(?) 것 같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윤수일은 죽은 적이 없다. 꾸준히 달려 마침내 50주년 콘서트(5월 1일 세종문화회관)까지 도달한 관록의 싱어송라이터다. (지금 인기를 구가하는 가수 중 데뷔 50주년 콘서트를 광화문 한복판에서 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옛날엔 방송사에서 그해의 최고 히트곡(딱 한 곡)을 선정해서 발표했는데 윤수일은 데뷔곡(‘사랑만은 않겠어요’) 하나로 단번에 10대 가수 가요제(MBC) 최고인기가요상(1978)을 수상할 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당사자는 지금 웃으며 추억을 소환해도 소년의 과거를 들추면 억장이 무너진다. 영화로 만들면 전반 10분은 손수건이 필요할 정도다. 왠지 몰라도 그때는 이국적 외모가 이질감을 부르던 시기다. 편견에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 기억해두면 좋은 별 3개(분별 구별 차별)가 있다. 분별은 이성적이고 구별은 중립적이지만 차별은 야만적이다. 윤수일의 초기 자작곡에 비어 있거나 가로막힌 곳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까닭을 짐작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아파트’) ‘보이는 건 까마득히 쌓아 올린 벽돌담’(‘제2의 고향’).
윤수일의 노래는 가사와 선율이 따로 논다. 내용은 울적한데 리듬은 명랑하다. 긍정의 세계관을 엿보게 한다. ‘제2의 고향’(1981)을 따라 부르다가 나는 희망의 접속사 하나에 주목했다. ‘정 둘 곳 찾아봐도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나에겐 제2의 고향’ ‘가슴은 답답하고 머리는 띵하지만 그래도 나에겐 제2의 고향’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서 왔지만 그래도 나에겐 제2의 고향’. 문학마을엔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 가장 서러운 것 속에 더 타오르는 찬란한 꿈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김승희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불편한 시선을 견디며 이겨낸 자의 튼튼한 목소리에서 나는 고난의 유익함을 줍는다. ‘그대 가슴속의 따스한 미소와 장밋빛 체온 이글이글 사랑과 눈이 부신 영광의 함성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김승희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희망의 주문을 소리 내어 읽다 보니 저만치서 눈물 대신 기타를 든 키 큰 소년이 온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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