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존最古 리드오르간’ 소리복원·유산 등재 추진
공주기독교박물관 대표유물
유관순의 스승이 사용 추정
박목월 시인도 이곳서 결혼
복원 과정서 제작사 등 확인
국내 4명뿐인 마이스터 참여
“그때의 소리 꼭 들려드릴것”
공주 = 글·사진 박동미 기자
유관순(1902∼1920) 열사가 1914년부터 1916년까지, 매주 출석했던 충남 공주 공주제일교회 옛 건물엔 유 열사의 찬송가에 고즈넉한 음색을 더해줬을 111년 된 리드오르간(풍금)이 있다. 공주 지역 대표 근대문화유산인 건물은 현재 공주기독교박물관으로 쓰이고, 낡았지만 고풍스러운 자태의 오르간은 방문객들의 큰 관심을 받는, 이 박물관 대표 유물이다. 소리는 잃었으나, 긴 세월과 숱한 사연을 품고 있는 색바랜 건반은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오르간 멜로디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소녀. 공주 영명학교에서 이화학당으로 옮기기 직전, 열세 살 무렵의 유 열사를 떠올리게 한다.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선교사 오르간’으로 알려진 이 오르간의 정확한 제작 연도(1915년)가 최근 해체 작업을 통해 확인됐다. 그동안 박물관 측은 교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유 열사의 스승인 사애리시(본명 앨리스 샤프·1871∼1972) 선교사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했는데, 그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됐다. 지난달 24일 박물관에서 만난 박보영 부관장은 “오르간 내부에서 제작 연도와 함께 제작사, 제작자 이름까지 발견됐다”면서 “사애리시 선교사가 당시 영명학교 음악 수업과 공주제일교회 예배에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했다. 이어 “오르간을 가지고 들어온 선교사들 덕에 한국의 근대 음악교육이 시작됐는데, 온전하게 남아 있는 ‘선교사 오르간’이 거의 없다. 앞으로 음악사·교회사 연구에 귀한 자료로 쓰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물관이 진행한 교인들 인터뷰와 다큐멘터리 등에 남겨진 구술 기록 등을 토대로 구성한 오르간의 여정은 흥미롭다. 1915년 미국 에스티 오르간 컴퍼니에서 제작돼, 당시 충청 이남 가장 큰 감리교 선교기지가 있던 공주에 유입된다. 이후 선교사들이 세운 영명학교와 공주제일교회에서 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사애리시가 거주하던 ‘여선교사들의 집’에서 해당 오르간을 봤으며, 그 위엔 함께 선교를 하다 먼저 세상을 뜬 남편(로버트 샤프) 사진이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1939년 사애리시 선교사가 약 40년의 사역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뒤, 오르간은 공주 지역 최초의 한국인 의사이자 이 교회 성도였던 고 양재순 장로 집안에서 보관하게 된다. 그러다 박물관이 세워질 때 기증돼 세상에 나온다. 박 부관장은 “1940년 전후,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귀국했다. 사애리시 선교사도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단출하게 떠났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다.
오르간은 유 열사뿐만 아니라 박목월(1915∼1978) 시인과도 깊은 인연의 끈으로 연결돼 있다. 바로 이 교회에서 1938년 박 시인이 결혼식을 올렸기 때문이다. 사애리시 선교사가 공주를 떠난 것이 1939년이기에, 박 시인의 결혼행진곡은 바로 이 오르간에서부터 울려 퍼졌을 것이다. 이날 박물관에서는 이 오르간을 해체해 제작 연도 등을 밝혀낸 박상률 마이스터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국내 4명뿐인 독일 오르간 마이스터로, 앞으로 오르간 소리 복원 사업에 참여한다. 박 마이스터는 “교회사에서 악기는 중요한 자료다. 20세기 초 리드오르간 복원에 참여하게 돼 영광이다”라면서 “서양 문물과 우리의 근대 문화가 어우러지던 시기, 선교사의 손때가 묻은 오르간을 마주하니 숙연해졌다. 그때의 그 소리를 꼭 듣고, 또 들려 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박물관 측은 오르간의 ‘진짜 이름’을 찾아, 국가문화유산 등재도 시도한다는 계획이다. 이찬희 공주대 문화재보존과학과 교수는 “사애리시 선교사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강한 증언과 정황이 있지만, 보다 명확한 기록을 찾는 게 급선무다”라면서 “미국 드루신학대 자료보관소 등 당시 감리교 선교사들의 연례보고서 등을 연구·조사해 보다 구체적인 근거들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동미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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