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논설위원

 

안보 경쟁이 야기한 러·우 전쟁

문명권 다른 동·서부 분리될 듯

이란전에 대서양동맹 균열도

 

북, 러시아 파병으로 밀착 가속

북핵 고도화·기술이전 가시화

위기 속 한미동맹은 약화 우려

1997년 발간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기술이 눈에 띄었다. ‘국가 패러다임’ 관점은 ‘강국들은 안보 불안에서 긴장으로 치닫곤 한다. 두 나라가 조화롭게 공존할 길을 모색할 수도 있겠지만, 대단히 보기 드문 예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안보 경쟁이 결국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문명 패러다임’은 ‘두 나라의 긴밀한 문화적·민족적·역사적 고리를 강조하면서, 동부 우크라이나의 (그리스)정교권과 서부 우크라이나의 연합동방가톨릭 사이의 문명 단층선’에 초점을 맞췄다. 러시아 정교권의 동부와 서유럽 가톨릭에 친화적인 서부가 분리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2026년 현재 시점에서 두 패러다임의 예지력을 비교해 보면, 둘 다 맞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서구)과 러시아 사이에서 중립 노선을 걷던 우크라이나가 친유럽으로 속도를 내자 러시아는 2022년 2월 24일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이 일방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면, 휴전 또는 종전 결과는 러시아가 점령한 돈바스 지역(도네츠크·루한스크주)을 포함한 동부 우크라이나가 서부와 분열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 패러다임으로 전쟁이 시작됐지만, 문명 패러다임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폴 대니어리 미 캘리포니아대 교수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차가운 결별에서 참혹한 전쟁으로’는 1991년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 독립부터 서구-우크라이나-러시아 간 관계를 통해 전쟁의 원인을 파헤쳤다. 우크라이나의 레오니트 크라프추크(1991∼1994)-레오니트 쿠치마(1994∼2004)-빅토르 유셴코(2005∼2010) 대통령 시기엔 친서방과 친러시아 사이에서 좌충우돌했다. 2004년 ‘오렌지혁명’과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2010∼2014) 대통령 집권 말 유럽연합(EU) 협력협정 체결 논의 중단에 반대하는 친서방 ‘유로마이단’ 시위가 전환점이었다. 야누코비치가 실각하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4년 크림반도 병합과 돈바스 친러시아 분리주의자 군사 지원에 나섰다.

푸틴은 1999년 말 대통령서리로 처음 등장하며 ‘러시아는 위대한 나라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것은 러시아의 지정학적·경제적·문화적 존재와 특성에 기인한다’고 했다. 강대국 러시아의 비전을 내놓은 것이다. 우크라이나 통제권을 잃지 않으려는 푸틴의 대(大)러시아주의에 맞서 페트로 포로셴코(2014∼2019)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2019∼현재)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EU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노력을 가속화했다. 서유럽과 러시아의 경제·안보 위기는 전쟁으로 폭발했다. 그 뒤 문명권 충돌과 미·중·러의 세력권 경쟁, 신냉전 양상, 자국 이익 최우선 국가주의가 얽히고설키면서 세계는 거대한 분열을 겪고 있다. 유럽은 이란 전쟁을 계기로 미국과의 대서양 동맹 균열 속에 대(對)러시아 안보 강화 등 자강의 길을 걷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군비 경쟁도 과열되고 있다.

동북아시아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다. 2024년 다급한 전황에 평양을 방문한 푸틴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을 담은 조약을 체결했다.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북한군이 파병되면서 북·러 관계는 혈맹으로 격상됐다. ‘쿠르스크 해방 작전 종결’ 1주년(4월 27일)을 맞아 북한을 방문한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북한과 2027∼2031년 5개년 군사 협력을 체결하기로 했다고 러시아 언론은 전했다.

김정은은 “조로(북러) 사이의 정치군사적 협력과 협조를 공고히 하기 위한 일련의 문제들을 토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보도했다. 양국은 북한 핵탄두 소형화와 미사일 및 드론 관련 최신 기술 이전, 합동 군사훈련 등 동맹 강화를 위한 액션에 돌입할 것이다. 북·중·러 권위주의 연대 속에 군사력이 더 강해지고 있는 북한에 대해 비핵화와 평화 체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우리 정부의 실질적인 노력과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을 겪으며 한반도 안보 위기는 증폭되는데, 한미동맹은 오히려 원심력이 커지는 양상이다. 북중러와 한미일 대립 속에 동북아판 러시아·우크라이나전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김충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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