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민의 정치카페 - 공소취소의 정치학

 

與 특검법안, 권력 구제의 도구화 우려… 위헌적 법률 설계로 지방선거 역풍

역사는 자기사건의 재판관 된 권력자 심판… 법 강행 땐 권력자 겨누는 칼 될 것

여권이 이재명 대통령 사건과 관련한 ‘공소취소 특검법’을 추진하면서 법치주의와 헌정 질서의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6·3지방선거를 앞두고 ‘내란청산’을 내세운 여권이 위헌적 법률을 설계함으로써 ‘사법내란’을 획책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역사는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된 권력자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권력이 자기 재판을 사법절차의 예외로 만드는 순간, 법은 몰락의 서사가 된다.

◇자연정의의 핵심원리

공소취소 특검법에 명시된 수사 대상 12건 중 8건이 이 대통령 직접 관련 사건이다. 형소법상 공소취소는 1심 판결 전까지의 사건만 가능한데, 이 법안은 확정판결이 난 사건까지 그 대상에 올렸다. 특검의 역할이 소(訴)를 제기하는 게 아니라 소를 없애는 것이 됐다. 대통령이 법안을 재가하고 그 법에 따라 임명한 특검이 대통령을 피고인으로 하는 재판의 생사를 결정하게 하는 희한한 K정치가 선보일 판이다.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격언은 로마법에서 영미 보통법으로 이어진 자연정의의 핵심원리이다. 17세기 초 영국 에드워드 코크의 ‘보넘 판결’이 남긴 경구는 두 가지다. 절차적 공정성의 원리와 권력제한의 원리. 권력이 자기 사건의 심판자가 되는 순간 헌법정신은 훼손되고 법은 자기 구제의 도구가 된다.

집권세력은 대통령 사건에 대한 공소취소를 ‘주권자의 예외상태’로 봐야 한다고 여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존 사법절차가 정치검찰의 조작기소로 오염됐고 정상적 법질서 안에서는 회복이 불가능하므로 특검이라는 예외적 장치를 통해 기존 재판을 중지해야 한다’는 논리일 것이다.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고 주장한 카를 슈미트 같은 학자가 있다. 하지만 나치 체제에 협력했던 그조차 ‘예외상태’는 공동체의 존립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장치였다. 대통령 본인의 재판을 정리하기 위해 예외가 호출된다면, 슈미트의 위험한 논리마저 사적 구제의 도구로 축소하는 일이다.

공소취소 공작은 자유민주주의 헌정이 가장 경계해야 할 ‘자기 예외화’의 정치다. 진보 색채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조차 최근 발표한 성명서에서 “조작기소 특검법은 우리 헌법이 정한 권력분립과 형사사법 절차의 기본 원리를 중대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대통령의 지연된 욕망

여론이 악화하자 이 대통령이 반응했다. 그는 여당이 추진하는 공소취소 특검법과 관련해 “특검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 사법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전제한 뒤 “구체적인 시기와 절차에 대해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적 의견 수렴과 숙의 과정을 거쳐 판단해 달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①공소취소 특검은 꼭 해야 한다 ②법안의 처리 시점은 유보한다 ③모든 책임은 당에 넘긴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검법 자체는 찬성하되,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불거지는 여론의 악화를 막기 위해 ‘선거 후 처리’라는 지침을 내렸고, 법안의 정치적 부담은 당이 져야 한다는 생각을 내보인 것이다.

대통령의 말 속에는 두 개의 욕망이 충돌한다. 사법 리스크 해소라는 재판 중단의 욕망과 지방선거 승리의 욕망이다. 대통령은 ‘진실 규명’과 ‘사법적 정의’라는 명분을 붙들고, ‘국민적 의견 수렴’이라는 말로 시간을 버는 한편, 최종 판단은 민주당에 넘김으로써 ‘욕망의 지연’을 꿈꾼다.

대통령은 숙의를 주문함으로써 욕망을 잠시 봉인했지만, 선거 후에는 자기 재판의 중단을 기필코 이루고야 말겠다는 속내를 구태여 숨기지도 않았다. 그의 메시지를 마키아벨리식으로 풀이하면 ‘목적은 유지하되 수단의 타이밍을 조절하는’ 것이다. 정치커뮤니케이션적 관점으로 보면 프레임 비용의 관리일 수도 있겠다. 정치문법으로 읽는다면, 본인 재판도 지우고 싶고 선거에도 이기고 싶은 것이다.

대통령의 ‘숙의’론은 ‘소음이 잦아든 뒤 처리하자’는 신호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진실 규명과 사법적 정의를 외치는 순간, 이는 ‘자기 구제’와 뒤섞이는 중이다. 이 혼종이야말로 공소취소 특검법 정국의 정치적 위험성이며 자신을 겨누는 칼이 된다.

◇역사의 교훈

#1. 닉슨 : 자기 수사를 지휘하려다 실권한 대통령

1973년 워터게이트 수사를 맡은 아치볼드 콕스가 백악관에 녹음테이프 제출을 요구하자,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법무장관에게 콕스 해임을 지시했다. 법무장관과 차관이 이를 거부하며 줄줄이 사임했고, 로버트 보크가 해임을 집행했다. ‘토요일 밤의 학살’ 사건은 닉슨 몰락의 전환점이 됐다. 닉슨의 치명적 실수는 범죄 의혹에 대한 수사를 자기 손으로 끊으려 했다는 것이다. 닉슨은 하원 본회의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1974년 사임했다.

#2. 제임스 2세 : 자기 면죄하려다 명예혁명으로 쫓겨난 왕

영국의 왕 제임스 2세는 특정인을 법 적용에서 빼낼 수 있게 한 ‘법률적용 면제권’을 행사하려 했다. 1689년 권리장전의 전신인 권리선언은 이를 왕권의 남용이자 법의 지배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규정했다. 제임스 2세의 몰락은 명예혁명으로 이어졌다. 법을 어긴 것이 제임스 2세의 실정법적 죄였다면, 법의 적용 여부를 자신이 좌우하겠다는 생각은 그의 도덕적 죄였다.

동서고금을 통해 통치자가 법률의 예외상태를 배급하는 권력자가 되려 하는 순간 헌정의 적으로 전락한 사례는 많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재판을 정의의 이름으로 사유화하려다 자신이 만든 기요틴에 쓰러졌다.

권력은 자신의 사건만큼은 예외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왕은 대권을 말하고, 혁명가는 민중의 이름을 팔고, 대통령은 진실과 정의를 내세웠다. 그러나 권력으로 자기 사건을 처리하려는 순간, 공적 정의는 사적 구제로 변질됐다. 그 변질을 시민이 알아차릴 때, 권력의 정당성은 무너졌다.

◇사법내란

집권세력은 진실 규명이라 말하고, 야권은 자기 구제라 읽는다. 이 간극에서 공소취소 특검법은 지방선거의 핵심 이슈로 번졌다. 형법상 내란은 폭동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헌정의 언어는 형법 조문보다 넓다. 총칼로 헌법기관을 점거하는 것이 고전적 내란이라면, 입법권과 행정권을 동원해 진행 중인 재판을 멈춰 세우는 것은 사법내란이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설명

‘보넘 판결’은 의회 제정법이 이성에 반할 때 보통법이 그것을 통제한다는 에드워드 코크의 판결 사례. 코크는 의회 진출 후 국왕의 권한보다 성문법을 우위에 놓으며 1628년 권리청원을 주도.

‘예외상태’란 국가 위기 속 법질서가 기능하지 않는 상태. 나치에 협력했던 독일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는 주권자(통치자)가 예외상태에서는 국가긴급권 등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창.

■ 세줄 요약

자연정의의 핵심원리: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격언은 영미 보통법을 관통하는 자연정의의 핵심원리. 권력이 자기 사건의 심판자가 될 때 헌법정신은 훼손되며 법은 사적 구제의 도구가 돼.

대통령의 지연된 욕망: 대통령이 공소취소 특검법 ‘숙의’를 주문한 것은 여론 악화를 막기 위해 ‘선거 후 처리’라는 지연된 욕망을 드러낸 것. 대통령에겐 재판 중단과 지방선거 승리라는 두 개의 욕망이 충돌 중.

역사의 교훈: 역사는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된 권력자에게 관대하지 않아. 권력이 자기 재판을 사법절차의 예외로 만드는 순간 몰락을 자초. 입법권과 행정권으로 진행 중인 재판을 멈춰 세우는 것은 사법내란.

허민 전임기자
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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