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 인터뷰 - 16일 ‘정기연주회’ 앞둔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 박성호 지휘자

 

발달·시각·청각 등 크고 작은 장애 가진 40명의 단원들로 구성

연습도 공포였던 시절 거쳐 한 명씩 지도 끝에 비약적 성장

창단 2년여 만에 ‘베토벤 운명 교향곡’ 등 난도 높은 클래식 연주

비장애인 예술 쫓아가는 것 아닌 새로운 장르로 봐주길

이상한 소리 내는 친구들 봐도 피하지 않는 게 ‘장애인 인식개선’

박성호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지난 6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일원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서 객석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가 선 자리에서 오는 16일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의 제2회 정기연주회 ‘봄의 소동’이 막을 올린다.   백동현 기자
박성호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지난 6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일원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서 객석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가 선 자리에서 오는 16일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의 제2회 정기연주회 ‘봄의 소동’이 막을 올린다. 백동현 기자

수원=박성훈 기자

‘빰빰빠빰, 빰빰빠빰….’

지난 6일 경기 수원시 경기아트센터 도움관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 연습실에선 장중한 관현악이 울려 퍼졌다. 베토벤 5번 교향곡 ‘운명’ 1악장이었다. 40명의 크고 작은 장애를 가진 오케스트라 단원 앞에 선 박성호(51) 지휘자는 연주에 앞서 한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질문을 했다.

박 지휘자가 “1악장에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라고 묻자, “음…. 진지한 표정이요”라는 답이 되돌아왔다. 이어 그가 “그럼, 4악장에서는 어때?”라고 질문하자, “진지하기보다는, 경쾌한 표정이…”라는 답이 나왔다. 이에 박 지휘자는 “그래, 맞았어. 각 악장의 분위기가 연주자의 표정에서도 드러나야 해. 자, 시작합니다. ‘레디, 앤드(Ready, and)!’”라고 경쾌하게 외쳤다.

박 지휘자가 지휘봉을 번쩍 들자 각 단원의 악기가 침묵 속에 응집돼 있던 에너지를 내뿜으며 ‘운명의 문’을 두드렸다.

교향곡 운명은 오는 16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리는 ‘제2회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봄의 소동’의 메인 레퍼토리다. 발달·시각·청각 장애를 가진 단원들이 2024년부터 갈고닦아온 실력을 널리 알리기 위해 선택된 프로그램이다. 연주회를 열흘 앞둔 이날 단원들의 표정에서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박 지휘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 대목마다 연주를 끊고 “진지하게 좀 더 집중해달라”고 독려하며 일일이 지도를 이어갔다.

박 지휘자는 이날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 1악장은 고통과 어둠을, 4악장은 기쁨과 승리를 상징한다”며 “베토벤 자신이 청각 장애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던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 단원들이 이 곡을 연주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서사”라고 소개했다.

운명 교향곡은 들으면 누구나 아는 곡이지만, 리듬·앙상블 등 전반에 걸쳐 연주 난도가 상당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장애인 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의 교향곡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클래식계에서는 하나의 거대한 도전이다.

“팀파니를 맡은 한 단원은 가천대 음대를 졸업한 재원이지만 청각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맨 뒤에 앉아 있는 그 친구는 연주 내내 제 입 모양을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소리가 아닌 마음의 눈으로 신호를 읽는 거죠. 처음엔 연습실과 공연장의 울림 차이 때문에 볼륨 조절에 애를 먹기도 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제가 어떤 사운드를 원하는지 눈빛만 봐도 압니다.”

박 지휘자는 이번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성장’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지난해 제1회 정기연주회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상전벽해(桑田碧海)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성장의 핵심은 ‘기본기’다. 사실 1년 전만 해도 대극장의 울림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던 불협화음들이 녹음된 영상을 통해선 적나라하게 드러나곤 했다. 음정이 맞지 않아 지휘자 스스로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단순히 박자가 맞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음악 용어로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 즉 소리의 발음과 명료함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오케스트라는 옆 사람의 소리를 들어야만 가능한 앙상블의 예술인데, 우리 단원들이 이제 그 소통의 즐거움을 알게 된 거죠. ‘음악을 책으로 배웠어요’ 하던 친구들이 이제는 ‘이렇게 하니 훨씬 아름답구나’를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박 지휘자는 장애인 오케스트라라고 해서 ‘복지 차원’의 쉽고 익숙한 영화 음악만 연주해야 한다는 편견에 정면으로 맞선다. 전문가들이 봐도 허세라고 느낄 만큼 어려운 곡들을 프로그램에 넣은 이유는, 장애인을 비장애인의 잣대로만 평가하지 말아 달라는 무언의 외침이기도 하다.

장애인 오케스트라와의 첫 만남은 2006년 우연히 찾아왔다. 발달장애인과 취약계층 등을 위한 공익활동을 하는 단체인 하트하트재단에서 장애인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있었던 것. 모든 전문가들이 지휘자 자리를 마다하고 있던 때, 그에게 기회가 갔다.

“면접 질문은 딱 하나였어요. ‘발달장애인으로 오케스트라가 가능합니까?’ 저는 장애에 대해 무지했기에 ‘그럼요’라고 답했습니다. 그 무지함이 시작이었죠. 만약 지금만큼의 고통과 어려움을 미리 알았더라면 저는 도망갔을 겁니다. 도레미파솔라시도부터 가르쳐야 하는 상황, 한 번 연습하고 나면 며칠씩 두통에 시달렸어요. 매주 연습 날이 오는 게 공포였던 시절을 거쳐 여기까지 왔습니다.”

박 지휘자는 장애인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비장애인을 뒤쫓는 예술’로 보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를 ‘신발 끈 묶기’에 비유했다.

“우리는 신발 끈 묶는 걸 언제 배웠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쉽게 해냅니다. 하지만 우리 단원들은 그 리본 묶는 법을 배우는 데만 3년, 길게는 평생이 걸리기도 합니다. 남들이 쉽게 해내는 일을 위해 수만 번을 반복해야 하는 이들이 바이올린을 잡고 베토벤을 연주한다는 것, 그 소리 하나에는 그 과정의 눈물과 인생의 무게가 통째로 실려 있습니다. 경기필하모닉처럼 완벽한 음정은 아닐지 몰라도, 그들이 내뱉는 운명의 첫 소절은 지휘자인 저조차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예술 장르입니다.”

그의 단원 중에는 중증 자폐를 앓는 호른 주자도 있다. 일상적인 대화조차 어려운 중증이지만, 호른 연주만큼은 수준급이다. 최근 그의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그는 평소와 달리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발달장애인은 타인 고통에 무심할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그는 어머니의 부재를 온몸으로 느끼며 슬퍼했다. 기적적으로 회복해 다시 연습실을 찾은 어머니를 보며 단원 가족 모두가 내 일처럼 울었던 일은 이 오케스트라가 단순한 연주 단체 이상의 공동체임을 증명한다.

그의 최종 목표는 명확하다. 단순히 실력 좋은 지휘자로 남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음악 교육의 매뉴얼을 정립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선구자가 되는 것이다.

“장애인 인식 개선은 지하철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는 친구들을 피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마다 하나씩 장애인 오케스트라가 생기고, 교향악 축제처럼 이들이 한데 모여 연주하는 날을 꿈꿉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국가가 운영하는 ‘국립 장애인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제가 20년 넘게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쌓은 노하우가 제2, 제3의 박성호들에게 전달돼 이 친구들이 음악으로 당당히 사회의 일원이 되길 바랍니다.”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유다빈밴드 멤버들이 지난해 9월 15일 서울 강서구 스카이아트홀에서 유다빈밴드 정규 2집 CODA 발매기념 쇼케이스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유다빈밴드 멤버들이 지난해 9월 15일 서울 강서구 스카이아트홀에서 유다빈밴드 정규 2집 CODA 발매기념 쇼케이스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초 4년 1만5000원짜리 기타 사서 독학… 중 3땐 밴드 만들어 로커 활동”

■ 박성호 지휘자는…

여러장르 합쳐 젊은층 찾게할 것

“저는 사실 로커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록 음악과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사운드를 합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습니다.”

박성호(51)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지난 6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적 뿌리가 클래식이 아닌 헤비메탈에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중학교 3학년 시절 밴드를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그가 속한 밴드는 자작곡이 아닌 다른 가수 곡으로 공연하는 이른바 ‘카피 그룹’이었다. 메탈리카·스콜피온스·오지 오즈번 등 곡을 연주하며 공연 무대에 올랐다.

“활동하려면 멋있고 그럴듯한 이름이 필요했는데, 영어사전에서 ‘절정’이라는 뜻의 ‘제니스’(Zenith)란 단어에 시선이 가더군요. 친구들과 이 이름을 간판으로 내세워 공연을 다녔습니다.” 공연을 위해 직접 표를 판매하고 대관과 장비 마련을 직접 해본 경험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현장’에서 체득하게 한 계기였다.

기타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독학으로 시작했다. 기타가 없어 나무 막대기에 철사를 매달아 코드 잡는 연습을 했던 그는 5세 위인 형 학원비를 몰래 빼돌려 동네 악기사에서 1만5000원짜리 싸구려 기타를 샀다고 한다.

기타 한 대로 음악에 몰두했고, 가족의 반대 속에서도 몰래 연습을 이어갔다. 그는 “기타를 옷장에 숨겨두고는 새벽에 일어나 코드 연습을 했는데, 그때는 부모님 속을 무던히 썩이던 아이였다”며 당시 열정을 떠올렸다.

늦깎이에 트롬본을 배워 한양대 음대에 진학하며 본격적인 클래식의 길로 들어섰지만, 그의 가슴 속엔 여전히 록 음악의 뜨거움이 남아 있다.

록과 클래식을 모두 경험한 그의 이력은 현재 경기리베라오케스트라 운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에는 대중음악과의 협업을 적극 시도하고 있다. 그는 유다빈밴드와의 공연, 걸그룹 여자친구의 멤버 예린과의 협업 사례를 언급하며 “젊은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장애인 오케스트라를 접하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협업 범위를 더욱 넓힐 계획이다. 젊은층이 선호하는 밴드뿐 아니라 중장년층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가들과의 작업도 구상 중이다. 이를 통해 장애인 연주자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공연 모델, 나아가 하나의 음악 장르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다.

박 지휘자는 “스콜피온스와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과 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협연은 록과 클래식이 얼마든지 최고의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 사례”라며 “우리 역시 앞으로 다양한 뮤지션과 함께 협업하며 음원 제작에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성훈 기자
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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