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 책
어느 개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마리카 마이얄라 지음┃정보람 옮김┃위고
그림을 그리는 늑대는 커다란 성에 혼자 산다. 새로운 걸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지내는 동안 감자에는 곰팡이가 피고 자전거에는 바람이 빠진다.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날들 속에서는 우아한 실내도 드넓은 정원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늑대가 예약한 정원사가 도착한다. 정원사 개는 가위질을 잘못해도 비가 내려도 실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할 일을 한다. 예상치 못한 변수마저 즐거운 일과처럼 보일 만큼 유연하게 일하는 개 덕분에 늑대의 성은 하루하루 생기를 띤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늑대가 “다른 데 가서 찰칵거리면 안 될까?” 하고 쏘아붙이자 개는 따뜻한 커피와 아몬드번을 꺼내 늑대에게도 나눠준다. 그 다정함 때문인지 늑대는 개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리고선 그걸 찾아 어두운 정원을 헤매는 것 같은 기분”이라며 자신의 불안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마침내 그림을 시작한다. 그것은 낡은 옷을 입고 있는 개의 초상화다.
모티브가 떠오르지 않아 방황했고 마음을 열지 않아 불행했던 늑대는 무성한 정원을 자신만의 작품으로 완성해 간 개에게 영감을 받았다. 모든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당당한 개이자 사랑받고 사랑하는 신실한 개였기에 늑대는 자신의 치부와 고통 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과 작품 세계까지 기꺼이 공유한다.
진정한 친구를 갖게 된 늑대가 미술관에 걸린 개의 초상화를 어서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마음과, 늘 방에 걸려 있었지만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그림 속의 긴 부리 새에 대해서 말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감미롭고 충만하게 전해진다. 자신의 삶을 누리고 마음을 나눌 줄 아는 부드럽고 강인한 개처럼 나도 늑대 그림의 주인공이 될 만한 자격을 갖춰가야겠다. 62쪽, 1만5000원.
신수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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