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개의 북을 두드리며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저자의 두 번째 단편집이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흔히 ‘이야기꾼’이라 불린다. 신화와 전설, SF까지 다양한 장르를 유려하게 엮어내고, 플롯과 시점까지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재주가 있다. 2001년에 쓴 초기작이지만, 그런 그의 작품 세계가 책에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작가 본인은 이 책을 두고 “서술자를 훈련시키기 위한 체육관”이라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수록된 열아홉 편의 단편은 각기 다른 화자, 다른 시점, 다른 호흡으로 마치 실험하듯이 쓰였다. 무엇보다 여러 편에 걸쳐 ‘이야기꾼’이 서술자로 등장해 작품과 섞여든다. 독자가 자신이 읽고 있는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 서사를 뒤흔들기도 하고(‘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작품 속 ‘나’와 저자인 ‘나’ 사이에서 자아가 헷갈리기도(‘주체’) 한다.

그렇다면 토카르추크는 어째서 이런 혼란을 야기하는가. 그 답은 표제작인 ‘여러 개의 북을 두드리며’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낯선 도시로 이주해온 화자 ‘나’는 첨단의 풍경 속에서 길을 잃는다. “밤사이 빈 광장에는 유리로 된 건물들이 솟아올랐다”가 사라지고, 지하철역은 순서를 바꾼다. 어제 와인과 빵을 샀던 가게를 다시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정처 없이 헤매던 나는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판잣집에서 크고 작은 북들을 두드리는 이들을 지켜보게 된다. 혼란의 도시에서 유일하게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는 북소리. 화자는 여기에 이끌려 무리에 합류하게 되고, ‘나’는 알아차릴 새도 없이 ‘아무것도 아닌 여자’로 변모한다.

여기서 ‘나’를 그 자리에 붙들었던 북소리를 ‘문학’이라고 본다면 어떨까. 문학은 정신없이 변하고 이곳이 저곳이 되어버리는 세계 속에서 우리가 우리일 수 있게 한다. 동시에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여자’가 될 수 있게도 한다. 언제든 우리를 분열시키고, 그러면서도 어지러움 가운데 무언가를 또렷이 볼 수 있게 하는 것. 토카르추크는 그것이 문학의 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지금’을 소유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특권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래서 언어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사건들을 조정하고, 시간을 다스리고, 잠시나마 시간의 흐름을 멈추기 위해.” 568쪽, 1만9800원.

신재우 기자
신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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