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묻는 사회

정회옥 지음┃한겨레출판사

 

전세대 막론하고 나이대로 조롱·멸시

차별적 언어로 취업·정책 등 장벽 생겨

타인의 삶·존재 단정짓지 말고 화합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중년이라면 ‘영포티’ 소리에 괜히 자신의 차림새를 다시 살펴보거나, 근처에서 ‘개저씨’ ‘김여사’라는 단어가 들릴 때 마음이 불편해진 경험이 한 번씩 있을 것이다. 비단 40∼50대만 그럴까.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누구나 나이에 있어서 ‘약자’다. 중년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며 조롱받을 때, 노인은 늙었다는 이유로 소외된다. 청년은 세상을 잘 모른다는 편견에 훈계의 대상이 되고, 아동은 그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발언권을 인정받지 못한다. 나이대를 기준으로 한 배제와 차별이 전 세대를 막론하고 일어나고 있기에, 물러설 곳이 없는 셈이다.

게다가 만나자마자 “몇 살이냐” 나이를 묻는 사회라면 어떤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개인의 성격과 능력, 정체성을 보여주기도 전에 나이의 차별이 관계를 옭아맨다. 그리고 상대방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나이 규율에서 조금만 벗어나는 듯 보이면, ‘어린 게 되바라진다’거나 ‘나잇값 못한다’는 식의 힐난을 퍼붓는다. 나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과도한 집착은 가히 ‘한국형 연령차별주의’라고 부를 만하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연령차별주의에 대한 논의가 지금 시점에 중요해진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각 세대를 가리키는 ‘멸칭’이 빠르게 만들어지고 확산되면서, 사회의 차별적 이데올로기를 재구성하고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먼저, 멸칭은 분명하고 공개적인 혐오표현이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별다른 비판의식 없이, 심지어 희화화되는 경우가 잦다는 점을 짚는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과 어린이들에게 멸칭은 더욱 매섭다. 멸칭 중 ‘틀딱충’ ‘연금충’ ‘할매미’는 노인을 벌레로 형상화하는 극단적인 표현이다. 아이들에게는 ‘급식충’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가 하면 무개념 저연령층을 겨냥한 인터넷 용어 ‘잼민이’도 등장했다. 중장년은 ‘개저씨’ ‘영포티’ ‘김여사’라는 단어에 갇혀 버렸고, 청년들은 ‘MZ세대’ ‘욜로’라는 용어를 통해 무책임한 존재로 묘사된다.

한국식 연령차별주의 뒤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다. 저자는 유례없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뤄낸 한국의 동력, ‘성취에 대한 집착’이 양날의 칼이 됐다고 지적한다. 급속한 발전에 저해가 되는 소위 ‘비생산적이고 느린 존재’는 가치가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분위기에서, 사회적 약자인 노인과 어린이는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게다가 사람은 인정하고 싶지 않고 바람직하지 않은 자신의 특성을 타자에게 투영하는 경향이 있다. 성취에 목마른 한국 사회가 여전히 내포하고 있는 불완전한 특성을 누군가에게 투사해 비판을 쏟아내고 싶을 때, 그 대상이 특정 연령대가 된다. 생존을 위한 비교와 경쟁은 종종 젊은 세대도 겨냥한다.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중년, 불평불만과 남 탓만 일삼는 청년도 공격의 대상이 된다.

모두가 차별받을 때 승자는 없다. 차별적 언어는 사회의 긴장을 높이는 것은 물론 ‘노노(老老) 갈등’ 같은 연령대 내 분열도 심화시킨다. 한편으로는 노키즈존, 노시니어존이라는 공간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나아가 기업의 각종 채용규정, 심지어 정책 등에서도 나이를 기준으로 여러 장벽을 만들어내 사회 전반에서 특정인에게 기회와 자원을 배제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저자는 일찌감치 노인에게 덧씌워진 ‘무능력하고 쇠약한 존재’라는 이미지가 제도적 연령차별인 정년제로 이어지거나 최근의 고령자 운전제한 논쟁으로 옮겨간 바 있음을 지적했다. 연령차별주의를 타고 노인 세대에 대한 편견이 커갈수록, 향후 젊은 세대가 노인을 위한 복지 제도를 결정하게 될 때 부정적 인식이 작동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나이 묻지 않는 사회, 나이로 개인의 삶과 관계를 규정하지 않는 사회가 가능할까. 저자는 이를 위해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 간 접촉을 유도하는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고령층과 청년층 간 주거 공유 프로그램인 서울시의 ‘한 지붕 세대 공감’, 네덜란드의 ‘후마니타스’, 프랑스의 ‘한 지붕, 두 세대’ 등이 그 예다. 미디어와 학교 교육현장에서 세대 간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국내 한 연구에서 중학교 사회 교과서 내용을 분석해봤더니 고령화로 인한 사회 부담, 노인 소외 등 부정적 기술이 대다수였는데, 이보다는 생애주기별 새로운 발달이 이뤄진다는 점을 기술하는 식이다. 세대 간 교류와 통합을 전담하는 정부 기구를 설치하거나 정부가 민간단체 활동을 지원하는 제도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중 가장 앞에 있어야 할 것은 우리가 연령차별주의 사회에 살고 있음을 인식하는 ‘민감성’, 그리고 개선해야겠다는 ‘의지’일 수밖에 없다. 348쪽, 2만 원.

인지현 기자
인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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