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헌법학회 회장

대한민국헌법 제104조 제1항과 제2항에 따르면,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는 사법부 독립의 근간이 되는 핵심 조항이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대법관을 지명하고, 상원의 동의를 받아 임명한다. 대법원장(Chief Justice)은 ‘동료 중 첫 번째’(First among equals)일 뿐, 다른 대법관의 인사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대통령이 비공식적으로 대법원장의 의견을 들을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일 뿐 대법관 임명은 전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이다.

그 반면 우리 헌법은 대법원장이 제청권을 행사하고, 대통령은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자 중에서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미국과는 달리 헌법상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인정되고 대통령이 여기에 기속 되는 구조다. 아무리 대통령이 임명을 원하는 판사라도 대법원장이 제청할 수 없다고 거부하면 임명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우리는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을 준 반면, 미국은 대통령이 모든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된다. 헌법학계에서는 대체로, 미국과 달리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에게 실질적인 ‘대법관 제청권’을 줌으로써 대통령 측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방벽을 세운 것으로 이해한다. 즉, 현행 1988년 헌법의 기초자들은 대통령에 의한 사법권 독립이 위태로웠던 과거의 악습을 끊어내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40년간 역대 대통령과 대법원장은 이 문제를 비교적 무난하게 해결해 왔다. 적어도 국민이 알 정도의 명시적 충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최근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인사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대법원 사이의 기류가 심상찮다는 보도가 나온다. 특히, 청와대가 특정 법관을 미리 ‘낙점’하고, 조희대 대법원장이 다양한 이유로 고심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 헌법이 지향하는 권력분립 원칙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과 정치체제에 관한 최고 근본 규범’이다. 모든 국가의 헌법은 한 줄 한 줄에 시대정신과 근본 가치를 담고 있다. 현행 헌법 제정 당시에는 외부, 특히 대통령과 행정권의 압력·간섭으로부터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는 일이 급선무였기에 대법원장에게 실질적인 대법관 제청권을 준 것이다.

최근 법 개정으로 대법관 수가 14명에서 26명으로 대폭 늘어났고, 현 대통령이 이 중 많게는 22명까지 임명할 수 있다. 대법관의 임기가 6년이니 차기 정부 중반까지도 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들이 재임하게 된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미리 ‘낙점’한 법관을 대법관 후보자로 추천하라고 한다면 이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최종 임명권을 주면서도 대법원장의 ‘제청’을 필수 요건으로 둔 이유는 명확하다. 사법부는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워야 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관 인사가 정적(政敵) 간의 기싸움이나 진영 논리의 장이 돼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온전히 인정하고, 대법원장은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법의 명문 규정에 따라 최선의 인물을 제청해야 한다. 그것이 작금의 혼란을 수습하고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는 유일한 길이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헌법학회 회장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헌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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