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경제부 차장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1∼3일 하루에 하나씩 페이스북에 올린 글들은 일종의 고해성사이자 자아비판이다. 저신용자들을 외면하는 현재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정책입안자의 문제 제기에 공감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금융정책을 지속적으로 봐온 입장에선 솔직히 ‘그럼 어쩌자는 것이냐’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30년 넘게 경제 관료로 살아온 사람이 현시점에서 보여줘야 할 것은 뒤늦은 반성이 아닌 현실적 해법이다.
사실 저신용자들을 위한 금융은 산업화 이후 역대 정부의 주요 정책과제로 다뤄졌다. 농업 중심의 산업구조에선 농가 부채 탕감이 정부의 대표적 금융(?)정책이었지만, 산업화·도시화 이후엔 도시 생활자에게 무게가 실린 금융정책이 정치적 목적과 보태져 추진됐다. 외환위기 당시 출범한 김대중 정부에서는 저소득층·금융소외계층을 위한 소액 무담보 대출 개념의 도입, 노무현 정부에서는 신용회복위원회의 설립 및 개인워크아웃 제도가 시행됐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금융소외계층(신용등급 7등급 이하, 저소득층)을 위한 미소금융과 햇살론이 만들어졌다. 박근혜 정부(중금리 대출 신설 등)와 문재인 정부(포용금융 개념 도입 등)도 서민금융을 주요 정책과제로 삼았다. 이렇게 각 정부의 정책을 일일이 열거한 이유는 서민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어느 정부건 노력하지 않은 적이 없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런 노력들에도 왜 저신용자들을 위한 금융은 답보하고 있는 걸까?
그간 역대 정부의 서민금융정책의 한계와 취약점을 일일이 다 거론할 순 없지만, 가장 큰 맹점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책의 한계를 얘기할 때 언급되는 정부 보증 의존에서 발생하는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나, 저신용자 구제를 위한 사다리 기능 부실, 수요자인 취약계층에 대한 신용정보 부족 등은 정치적 목적만을 앞세워 추진한 것에서 비롯됐다. 정치 바람에 떠밀린 정책은 현실과 괴리됐다. 표심을 얻기 위해 보증 비율을 높여 민간 금융기관이 여신 심사의 고민 없이 저신용자에게 대출을 할 수 있도록 상품을 만들다 보니 정책자금은 조기에 고갈됐고 신용정보는 무용했다.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은 부실 걱정을 하지 않으니 대출자들에 대한 사후관리도 등한시했다. 그런 방치 속에 정책금융 혜택 이후 저신용자들은 자활할 수 있는 계기를 찾지 못해 또다시 저신용의 늪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통령의 말에 뒤늦게 대오한 정책실장이 앞으로 어떤 대안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다만, 향후 정책은 정치에 떠밀려 추진되는 것이 아닌 현실에 기반한, 제대로 된 포용금융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금융기관을 악마화하며 다그치기식으로 대출을 강요하는 것보다 대출을 하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 될 수 있도록 정책이 설계돼야 한다. 고금리 사금융을 척결한다는 명분으로 법정 최고금리 인하를 추진했지만, 그 결과 전통시장 좌판 할머니들의 유일한 금융 서비스까지 없애버린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한다. 당장 십수만 원 빌리기도 어려운 상인들에게 이른바 ‘일수’ 대출자들은 악질 조폭이 아닌 급전 대주는 이웃이었다는 걸 정부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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