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형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남보다 조금 앞선 넘버원보다

없으면 안 되는 온리원 더 중요

AI 시대 교육도 크게 바뀌어야

 

평가 왜곡 땐 노력 방향도 왜곡

경직된 보상 체계 문제점 심각

최근 성과급 파문 역이용해야

포스텍에 재직 중이던 시절, 은퇴하신 선배 교수께서 쓰신 ‘넘버원보다 온리원이 돼라’라는 책이 깊은 울림을 주던 생각이 난다. 비단 그 제목 때문만은 아니지만,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늘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고 강조한다. 남보다 조금 더 잘하는 사람(Number One)이 아니라,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사람(Only One)을 길러내는 일이야말로 교육의 본질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떤가. 수능을 정점으로 설계된 12년의 초·중·고 교육은 정해진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능력을 최고의 덕목으로 가르친다.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몰입할 때 행복한지 탐색할 겨를도 없이 입시라는 단일 대오에 줄을 선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학점과 스펙이라는 또 다른 레일 위에 올라타며, 사회에 나가면 조직의 부품으로 기능하는 삶을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온리원은커녕, 수많은 공산품 사이에서 조금 더 정밀한 부품이 되기 위한 목표를 이루려고 평생을 소진하는 구조다. 하지만 이런 식의 경쟁은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점차 의미를 잃어 가고 있다. 단순히 쌓아 올린 지식이나 노하우만으로는 인간이 인공지능(AI)을 앞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교육 현장이 달라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정답을 고르는 훈련 대신 문제를 스스로 정의(定義)하는 훈련을, 단기 점수 대신 장기적 최선을 다해 몰입을 장려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개혁만으로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아무리 온리원을 길러낸들, 사회가 그 탁월함을 제대로 인정하고 평가하지 못한다면 온리원을 향한 노력은 더 이상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없다.

지금 우리 기업과 조직의 평가 시스템을 냉정하게 들여다보자. 실질적 기여보다 자신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능력이 승진과 평판을 결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소셜 미디어에서 그럴듯한 언어로 자신을 브랜딩하는 이가 묵묵히 깊이 있는 성과를 내는 전문가보다 앞서 나가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 정도를 넘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환경에서 진짜 온리원은 지치고, 보여주기에 능한 이들이 득세한다. 평가가 왜곡되면 노력의 방향도 왜곡되기 마련이다.

경직된 보상 체계는 문제를 더욱더 심화시킨다. 호봉제와 경직된 연봉 테이블 안에서, 그리고 저(低)성과자에 대한 해고조차 쉽지 않은 노동 구조 안에서 기업이 탁월한 인재에게 해줄 수 있는 보상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 결과는 이미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최상위 이공계 인재들은 의과대학으로 쏠리고, 핵심 인력들은 보상이 유연한 해외 기업으로 발길을 돌린다. 온리원을 붙잡을 수단이 없는 시스템이 스스로 인재를 밀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반도체 산업 호황에 따라 가능해진 일부 기업의 거액 성과급 지급 환경은 우리에게 찾아온 소중한 기회다. 경직된 보상 체계 안에서 탁월한 기여에 대해 실질적인 보상을 돌려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성과급마저도 기계적 형평성과 나눠먹기식 압력 앞에 무너지게 된다면, 구조적 혁신의 기회까지 그대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큰 성과를 낸 온리원에게 그에 걸맞은 파격적인 보상이 돌아가는 문화가 정착돼야만, 탁월함을 향한 도전이 우리 사회 전반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제는 지금 이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다.

AI의 급격한 발전은 정해진 답을 이끌어 내고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영역에서 이미 인간을 압도하기 시작했고, 기업의 업무 방식도 이에 따라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수십 년간 고착된 교육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기업의 체질을 혁신할 동력이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 즉 깊은 전문성에 바탕을 둔 창의적인 문제 발견과 도메인을 넘나드는 통찰이야말로 AI 아닌 인간이 집중해야 할 지점이다. 교육을 바꾸고, 평가를 바로잡고, 보상을 제대로 설계하는 것, 이 세 바퀴가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온리원을 키우는 사회로 도약할 수 있다. 이번 기회마저 흘려보낸다면, 다음 기회는 기약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한보형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한보형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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