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기다리면 버스는 오지 않아 나는 단 한 대의 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되돌아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원점이.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버스를 기다리는 이 시간은 영원은 아니지만 길어 보여.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아닐 수 있다.
- 구윤재 ‘ETA’(시집 ‘미래 아이 뜀틀’)
높고 푸른 하늘의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날씨 속에선 누구든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출근이 늦었는데도.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듯한 마음으로 나는 올 때가 되면 오겠지. 마냥 너그럽고 여유 있다.
요즘은 버스정류장마다 전자표지판이 있고, 버스가 몇 분 뒤에 오는지 승객이 많은지 어떤지 다 알려주지. 가끔은 의아하다. 이게 무슨 도움이 될까. 버스가 언제 도착하든, 만원 버스든 아니든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주위를 둘러본다. 모두 스마트폰 화면에 코를 박고 있다. 예전 기억 속 장면과 비교해본다. 모두 버스가 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지. 뭐, 별반 달라진 것 없구나. 하지만 오늘 같은 날씨는 좀 아깝다. 느닷없이 찾아온 초록 잎들 흔들리는 사이사이 볕이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데. 이건 벚나무이고 저건 은행나무이고 건너편 줄지은 나무는 플라타너스라는 것도 새삼스러운데. 그야말로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느끼면서 버스를 기다릴 수 있는데. 내내 초연한 듯 굴고 있는 나도 마음 바쁠 때는 종종걸음을 칠 것이며, 마음 심드렁할 적에는 스마트폰이나 뒤적이겠지만, 하지만 오늘 같은 날씨는 좀.
언덕 아래 좌회전 신호를 받은 버스가 한껏 커브를 틀어 달려오고 있다. 내게로. 나를 태우러. 나를 서점 앞까지 데려다주려고. 전자표지판의 안내 음성에 사람들 하나둘 탑승을 준비한다. 어쩐지 아쉽다. 이번 버스는 보내고 싶다. 이 좋은 날씨 아래 우두커니 서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