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전 총리의 외교안보 자문역을 지낸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 일본 국제대 전 총장은 2004년 4월 유엔 일본대표부 차석 대사 부임 때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대사직을 몇 차례 제안받았으나 내 전문성을 활용하기 어려워 거절했지만, 유엔 차석 대사 제안엔 마음이 흔들렸다. 일본 외교의 전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과 같은 중견국에서 비외교관 출신이 대사로 임명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인데, 기타오카 전 총장처럼 신망 높은 학자가 고사를 거듭하다 유엔 차석 대사가 된 것도 아주 특이한 케이스다.

그의 2년 반에 걸친 차석 대사 경험을 담은 ‘유엔과 일본 외교’에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것은 외교관으로서 최고의 도전”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국·프랑스는 물론, 호주·캐나다 등 중견국들은 최고의 엘리트 외교관을 유엔에 보낸다. 외교 전문용어와 화법을 모르는 인사는 고위 외교클럽에 끼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사시 동기인 ‘외교 문외한’ 차지훈 변호사를 유엔 대사로 보내자 유엔 외교가에선 ‘한국이 유엔 외교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돌았다 한다.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의 백태웅 하와이대 교수는 OECD 대사가 됐고, 9년 전 퇴임한 이경은 전 복지부 국제협력담당관(행시 38회)은 휴스턴 총영사가 됐다. 이 대통령의 대장동 사건 변호인 누나라는 점이 발탁 배경이란 소문이 있다. 하남시장 출신 김상호 뉴욕 총영사도 외교 경력은 없다. 과거에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인사들이 공관장으로 나갔지만 이렇게 심하진 않았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임명한 공관장 47명 중 현직 외교관이 아닌 특임 공관장은 28명으로 약 60%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부 때의 20%, 문재인 정부 때의 30%에 비해 과하다.

대사가 공석인 나라는 호주·뉴질랜드 등 13개국, 총영사가 없는 영사관도 두바이 등 11곳인데 6·3 지방선거 낙선자들을 위한 자리라는 얘기도 들린다. 오죽하면 외교관 출신 김건 의원(국민의힘)이 특임 공관장의 경우 국회 인사청문회를 갖도록 규정한 ‘낙하산 대사 방지법’(외무공무원법 개정안)을 발의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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