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기 워싱턴 특파원

지난해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아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에릭 트럼프는 트럼프의 대선 출마 선언 10주년을 맞아 ‘트럼프 휴대폰’의 출시를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공식 발표했다. 이들은 ‘순수 미국 기술로 미국에서 제조한 스마트폰’이라고 홍보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SNS에 이와 관련한 소식을 공유하며 힘을 실었다. 이들은 2025년 여름부터 배송될 것이라고 약속했고 그렇게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 59만 명이 100달러씩 무려 5900만 달러(약 876억 원)의 예약금을 냈지만, 약 1년이 지난 올해 5월까지 단 한 대의 휴대폰도 고객에게 인도되지 않았다. 그사이 여전히 베일에 싸인 제조사는 약관을 슬그머니 수정, ‘제품이 아예 생산되지 않거나 판매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이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가상화폐에 적대적이었던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교체하고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의 아들들이 주도한 이더리움 기반의 탈중앙화 금융(DeFi) 플랫폼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WLF)’이 출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고 가상화폐 옹호자(Chief Crypto Advocate)라는 직함으로 버젓이 소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 후 트럼프 일가가 소유한 토큰과 플랫폼의 가치는 폭등했다. 공직이 직접적인 자산 증식으로 이어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SNS에서 499달러짜리 운동화, 59.99달러의 성경, 10만 달러짜리 시계를 소개하고 판매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시민책임윤리센터 조던 리보위츠 부대표는 “백악관이 트럼프 그룹의 한 부서처럼 보이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40년 지기 골프 친구인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특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전권대사’처럼 움직이며 주요 분쟁 협상을 주도했다. 이들은 평화임무 특사라는 이름을 달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평화 협상을 주도하는가 하면, 가자지구 전쟁을 끝내는 목적의 가자 평화 계획을 설계하기도 했다. 유대인인 두 사람에 대한 이란의 신뢰가 워낙 바닥이라, 이란과 협상에는 JD 밴스 부통령이 투입됐지만 이들 역시 협상장을 지켰다. 분쟁과 갈등 종식을 위한 협상은 매우 전문적인 분야로 부동산 투자가인 이들이 단기간 내 ‘뚝딱’ 해치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비판과 함께 이들의 ‘사익 추구’도 논란이다. 쿠슈너는 가자지구 복구 계획 논의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본인 회사에 대한 추가 투자 방안도 논의했다. 위트코프는 이란 전쟁 발발 전 오만을 방문, 자신이 건설 중인 리조트 현장을 점검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공식 급여를 받지 않는 ‘고문’ ‘특사’ 직함을 유지하며 엄격한 공직자윤리법의 잣대를 피해갔다.

트럼프 시대, 곳곳에서 250년 미국의 신뢰 자본이 무너지는 와중에 대통령의 선의와 명예에 기대, 세부 규제를 두지 않은 법체계와 윤리 규정의 한계 역시 고스란히 노출했다. 미국을 지탱해 온 ‘신사협정’과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은 권력이 수익 창출의 도구가 된 시점에 무너졌다. 민주주의 위기의 또 다른 단면이다.

민병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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