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소풍 논쟁과 교육 현실의 괴리
현장 고충 영상 수백만뷰 화제
교사 최대 고민은 학부모 민원
공교육을 서비스로 보는 시각
교육감 각종 공약에서도 외면
중대과실 책임으로 전환 필요
“이런 민원, 교육부 장관이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7일 교육부 주최 간담회에서 강석조 초등교사노조 위원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현장체험학습을 둘러싼 교사의 고충을 담은 이 영상은 사흘 만에 500만 뷰를 넘었다. 이른바 ‘소풍 논쟁’이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현장체험학습을 안전 우려와 책임 부담 때문에 줄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시작됐다. 교육부는 간담회를 열고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으나 현장 반응은 냉담하다. 교사들이 체험학습을 꺼리는 이유는 둘로 요약된다. 학부모 민원과 법적 책임이다.
강 위원장은 현장학습 전후로 “친한 친구와 짝을 시켜 달라” “왜 멀리 가서 멀미하게 하느냐” “왜 우리 아이 사진은 5장뿐이냐, 표정이 안 좋다”는 등의 민원이 쏟아진다고 했다. 지난해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도 한국 교사들이 꼽은 가장 큰 스트레스는 학부모 민원이었다. 그 비율은 조사 대상국 가운데 포르투갈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소풍만이 아니다. 학부모들의 유사한 민원 때문에 졸업식이 축소되고, 상장은 없어지고, 운동회와 운동장 축구도 사라지고 있다.
악성 민원을 쏟아내는 이른바 ‘괴물 학부모’ 문제는 2010년대, 1980년대생 학부모 세대가 등장하면서 본격화됐다. 학교폭력 등 학교에 대한 불신과 학부모의 고학력화가 맞물리면서 교사보다 자신이 더 전문가라고 믿는 경향이 강해졌다. 사회 전반의 학벌 중시와 사교육 시장 팽창은 학교를 교육 공동체가 아니라 서비스 시장으로 보는 시각을 확산시켰다.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감각으로 조금만 불만이 생겨도 민원과 고소·고발에 나서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된 것이다. ‘창피는 순간이요, 이익은 영원하다’는 식으로 염치를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런 학부모는 10% 안팎의 소수라고 보지만 이들 소수가 학교를 흔들며 전체 학생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해답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학교와 학부모의 신뢰 회복, 공교육 정상화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요원하다. 그렇기에 현실 문제를 해결할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구조에서 학생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 아동학대처벌법, 학교안전법 등이 한꺼번에 적용돼 교사 개인이 수사와 소송의 최전선에 선다.
학교안전법은 ‘안전조치 의무를 다한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규정하지만, 의무 범위가 모호해 실제 재판에선 교사의 과실이 폭넓게 인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22년 11월, 강원도 속초에서 현장체험학습 중이던 초등학생이 전세버스에 치여 숨진 사고에서 담임교사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후 교사들은 체험학습을 더욱 꺼리게 됐다.
교육 선진국에서는 정당한 직무 수행과 관련된 사고에 대해서는 국가나 교육 당국이 먼저 나서고, 고의나 중대 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교사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다. 반면, 현재 국내법 개정 논의는 ‘정해진 안전조치를 모두 이행한 경우에 면책한다’는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우리도 예측하기 어려운 사고까지 교사를 형사처벌하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 고의나 중대 과실이 있을 때 처벌하는 ‘중대 과실 중심 책임주의’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 활동과 관련된 경우, 국가소송책임제 도입도 검토돼야 한다.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아니라 책임의 경계를 재정의하자는 것이다. 학부모 민원을 교사 개인 휴대전화가 아닌 공식 창구에서 접수·조정하는 제도도 정착시켜야 한다.
하지만 ‘소풍 논쟁’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현금 살포 공약이 난무하는 교육감 선거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후보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치권은 정치 논쟁에 빠져 관심도 없다.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이명학 전 중동고등학교 교장은 ‘혁명적’이라는 단어까지 꺼냈다. 한국고전번역원장을 지낸 뒤 모교로 돌아가 4년간 교장으로 일하며 본 교육 현실이 절망스러웠다는 교장은 이렇게 말했다. “교사에게 교권을, 학교에 학교 주권을 돌려주는 혁명적인 특단의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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