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이의 올댓클래식 -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파국으로 치닫는 오텔로의 삶

음악·극 계속 이어지는 구성에

치밀한 심리극과 같은 오페라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작 추진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공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부산시가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을 초청해 베르디(사진) 오페라 ‘오텔로’ 공연을 추진하면서다.

부산오페라하우스와 부산콘서트홀을 운영하는 클래식부산은 지휘자 정명훈 감독을 중심으로 부산을 세계적 클래식 문화도시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정명훈은 2027년부터 밀라노 라 스칼라 음악감독을 맡을 예정이어서, 이번 ‘오텔로’ 논의는 사실상 부산과 라 스칼라를 잇는 그의 위치와도 맞물려 있다.

새 공연장의 첫 무대는 공간이 향후 어떤 정체성으로 시민에게 남을지 보여주는 상징이자 출발점이다. 그래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올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작품 자체를 들여다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왜 주세페 베르디의 ‘오텔로’인가.

1887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초연 당시, ‘오텔로’의 주인공 역을 맡은 테너 프란체스코 타마뇨 사진.
1887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초연 당시, ‘오텔로’의 주인공 역을 맡은 테너 프란체스코 타마뇨 사진.

흥미롭게도 ‘오텔로’는 항구에서 시작한다. 1막은 폭풍이 몰아치는 키프로스 항구다. 거친 바다를 뚫고 도착한 주인공 오텔로는 승리의 외침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개관작이 키프로스 해안가와 겹친다면 우연 이상으로 의미심장하다. 항구도시 부산, 그것도 북항 수변에 직접 맞닿은 오페라극장에서, 항만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오페라가 새 극장의 문을 여는 셈이다. ‘오텔로’는 라 스칼라와 베르디 모두에게 의미가 깊다. 1887년 2월 5일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곡의 원작은 셰익스피어 비극이며, 대본은 아리고 보이토가 썼다. 베르디는 1871년 이후 한동안 창작의 최전선에서 물러난 듯 보였다. 그러나 출판업자 줄리오 리코르디와 대본가의 집요한 설득은 베르디를 다시 극장으로 불러냈고, 마침내 탄생한 결실이 오텔로다. 이는 베르디에게는 무려 6년이라는 시간을 할애해 74세에 발표한 말년의 역작이었다. 작품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베르디는 초연 후 20번이나 커튼콜을 받았다.

또한 베르디의 ‘오텔로’는 일반적인 이탈리아 오페라처럼 독립된 아리아가 차례로 등장하는 방식에서 나아가, 음악과 극이 거의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구조를 지닌다. 이는 바그너가 제기한 음악극의 문제의식, 곧 음악·극·무대가 통합되어야 한다는 흐름에 대한 베르디식 응답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래서 ‘오텔로’는 음악 전체가 하나의 비극을 추동하는 치밀한 심리극에 가깝다.

그렇기에 ‘오텔로’는 마냥 친숙하고 편안한 곡은 아니다. 한 인간이 자신의 약점 때문에 무너져 가는 처절한 파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말하는 ‘하마르티아(hamartia)’란 주인공을 파국으로 이끄는 ‘치명적 결함’을 뜻한다. 오텔로에게 그것은 무어인으로서의 열등감, 아름다운 아내 데스데모나의 사랑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악역 이아고는 그 약점을 건드려, 오텔로에게 부인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의심의 씨앗을 심는다. 오텔로는 질투에 눈이 멀어 무고한 아내를 죽이고, 그녀의 결백을 확인한 순간 절망해 자결한다.

‘오텔로’는 오페라하우스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오페라극장은 인간의 사랑, 불안, 욕망, 몰락, 죄악, 죽음까지 극적 경험으로 바꾸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독창과 합창, 오케스트라와 무대미술이 결합하는 오페라는 한 도시가 감당할 수 있는 가장 복합적이고 거대한 종합예술 중 하나다. ‘오텔로’가 드러내는 비극성과 음악적 밀도는 공연장 개막에 분명 가볍지 않은 중량감을 부여할지도 모른다. 여러 의견이 오가는 지금, 먼저 ‘오텔로’라는 작품 자체의 무게를 확인하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음악 칼럼니스트 ‘음악과 이미지’ 저자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