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짜 정의 ‘온라인 분노 비즈니스’ 실태 추적
(4) ‘불법 사적제재의 악순환’ 끊어라 <끝>
△ ‘밀양사건’ 8건중 4건만 실형
최고 2년6개월, 평균 1년8개월
집행유예 3건에 벌금형도 1건
△ ‘사회적 살인’ 준하는 처벌 필요
‘신상털이’ 단순한 명예훼손 아냐
법조계 “처벌강화… 법개정 필요”
△ 범죄자 신상공개제도 손봐야
고무줄잣대가 ‘사적제재’ 부추겨
흉악범 신상 전면공개 청원에도
사회적 추가 논의는 지지부진
“고작 집행유예 3년이라니….”
지난해 10월 30일 창원지법,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라며 무고한 이들의 신상을 공개한 ‘사이버렉카(사이버레커)’ 유튜버 ‘전투토끼’ 부부의 항소심 선고를 맞아 아들과 함께 법정을 찾은 신상공개 피해자 A 씨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아들에게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고, 그간 힘들었던 시간을 보상받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전투토끼 부부 중 주범인 남편 노모 씨에게 징역 2년 6개월, 공범인 아내 김모 씨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A 씨는 “신상이 공개되면서 나는 사회·경제적으로 매장됐는데, 이 정도 형량만 나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이날 또 다른 피해자 B 씨는 전투토끼 부부의 항소심 선고 직후 법정 내에서 소란을 피우다 법원 직원들에게 끌려나가기도 했다. 재판부는 전투토끼 부부가 “반성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을 유리한 사정으로 판시했지만, B 씨는 이를 납득할 수 없었다. 그는 공범인 아내 김 씨가 선고 직후 자신을 보러 온 동생을 향해 손으로 ‘V’ 자를 그려 보이며 마치 집행유예 선고를 자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B 씨는 “설령 그들이 진심으로 반성했다고 하면 뭐합니까. 제가 입은 피해는 전혀 회복되지 못했는데”라고 울먹였다.
인터넷 미디어 발전으로 온라인상에 퍼진 정보가 과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확산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무분별하게 유포하는 ‘사이버렉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부 사이버렉카는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지만, 법조계에선 보다 근본적인 예방책 마련을 위해서는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이버렉카 양산을 막기 위해 ‘범죄자 신상공개’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대 형량 징역 2년 6개월…과연 합당한가?= ‘밀양 성폭행 사건’과 관련, 허위 정보를 유포해 재판에 넘겨진 사이버렉카들이 선고받은 형량 중 가장 높은 건 징역 2년 6개월이었다. ‘저격한’ 피해자가 많을수록 형량은 높았고, 수익을 위해 가짜 정보를 유포했을 경우 가중처벌됐다. 다만 명예훼손 사건의 특성상 징역 5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되진 않았다.
14일 문화일보가 ‘밀양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허위 정보를 유포한 사이버렉카들의 판결문을 입수·분석한 결과, 사건 8건 중 4건에 대해 실형이 선고됐다. 다만 실형이 선고된 사건의 평균 형량은 1년 8개월에 불과했다. 그 외 징역형 집행유예가 3건, 벌금형이 1건이었다.
이 중 가장 높은 형량인 징역 2년 6개월이 선고된 ‘집행인’과 ‘전투토끼’의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이들이 총 20명의 피해자를 상대로 저지른 범죄를 유죄로 인정했다. 특히 20명의 피해자 중 일부는 밀양 성폭행 사건과 무관함에도 가해자로 지목돼 사회·경제적으로 매장된 점이 유죄 판단의 주요 근거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두 피고인이 사이버렉카 행위로 인해 수익을 낸 점도 지적했다. 집행인 사건의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공익적 목적을 내세우면서도 영상 조회 수를 통한 광고 수익을 실질적 동기로 삼았다”고 판시했다. 전투토끼 사건의 재판부 역시 “피고인들이 유튜브를 이용한 이 사건 범행을 통해 짧은 기간 적지 않은 수익을 얻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물론 이 같은 실형 선고가 이례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 혐의인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 사건에서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정통망법상 명예훼손죄의 법정형은 최대 징역 7년까지 선고가 가능하지만, 입증 조건이 까다로운 편에 속한다. 피고인이 적시하는 내용이 허위이고 그 사실이 허위임을 인식해야 하며, 이 모든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밀양 성폭행 사건의 경우 사이버렉카 상당수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내용을 종합해 콘텐츠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이 허위성을 인식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실형 선고가 이례적’이라는 법조계 해석에도 피해자들은 더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무분별한 신상공개로 사실상 ‘사회적 살인’에 준하는 피해를 입었는데, 사이버렉카들의 범죄 행위를 단순 명예훼손 혐의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지방법원의 부장판사는 “법 형평성 등을 고려할 때 현행법으로 이런 사이버렉카들을 처벌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입법부 차원에서 법 개정을 통해 해결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이버렉카 부추기는 ‘신상공개 제도’= 사이버렉카들의 먹잇감이 된 범죄자 신상공개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의자별로 신상 공개 여부와 신상이 공개되기까지의 기간이 상이하게 나타나면서 사이버렉카들이 더욱 경쟁적으로 ‘사적 제재’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 이 같은 주장의 핵심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전면적인, 조건없는 흉악범 신상공개 촉구에 관한 청원’은 지난 3월 13일 청원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된 뒤 추가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5만4244명이 참여한 해당 청원은 각 수사기관 산하의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가 명확한 기준 없이 피의자의 신상 정보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불합리한 만큼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흉악범’의 신상을 무조건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실제 수사기관의 신상공개 기준과 관련해서는 ‘고무줄 잣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3월 경기 남양주에서 2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피의자 김훈(44)의 신상 정보가 사건 발생 닷새 만에 신속하게 공개된 것과 달리, 서울 강북구 연쇄살인 사건 피의자인 김소영(20)의 신상 정보는 체포로부터 한 달이 걸리면서 모호한 신상 공개 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특히 김소영 사건의 경우 초기부터 연쇄살인이 의심됐던 사건인 만큼 신상 공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경찰에선 비공개, 검찰에선 공개로 정반대의 결정을 했다.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으나 신상공개 결정이 미뤄진 한 달 사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김 씨의 신상 정보가 빠르게 퍼져 나갔다.
현행법상 검찰 또는 경찰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피의자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나 재범 방지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의자의 얼굴·이름·나이를 공개할 수 있다. 하지만 ‘잔혹성’이나 ‘공익’에 대한 판단이 수사기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매번 형평성 논란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유사한 사건임에도 수사 주체의 성향이나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공개 여부가 달라지는 등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최초로 ‘사적 제재 플랫폼’을 만들었던 디지털교도소 개발자 C 씨는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제도적으로는 수사 과정과 신상공개 기준을 보다 투명하게 설명하고, 피해자 보호와 정보 공개 기준에 대해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현웅 기자, 노지운 기자, 노수빈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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