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갈수록 범용화되면서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의 직업 대부분이 소멸할 수 있다는 우려는 당분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만, 직업 재편에 따른 노동시장의 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AI가 일자리를 일괄적으로 없애기보다는 반복·단순 업무를 줄이고, 일부 직무의 역할을 바꾸는 방식으로 노동시장을 재편하고 있다는 것이다.
14일 한국고용정보원의 ‘2025~2035 정성적 일자리 전망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관리자 직종을 제외한 분석 대상 182개 직업 가운데 향후 10년간 감소할 것으로 분류된 직업은 한 개도 없었다. ‘다소 감소’는 12개(6.6%)에 그쳤고 ‘현 상태 유지’가 114개(62.6%)로 가장 많았다. ‘다소 증가’는 47개(25.8%), ‘증가’는 9개(4.9%)였다.
이같은 전망은 AI 확산으로 머지 않아 대규모 직업 소멸이 나타날 것이라는 기존의 인식과 다른 결과여서 주목된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지난해 4월 발간한 ‘인공지능에 의한 화이트칼라의 직무 대체 및 변화’ 보고서에서는 생성형 AI 확산으로 화이트칼라 직군이 블루칼라보다 AI에 대체될 가능성이 약 5.5% 더 높다며 이들의 직업에 집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한 바 있다. 반면, 이번 전망에서는 ‘직업 자체의 소멸’보다는 ‘직무 내부의 변화’가 더 뚜렷하게 나타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보고서는 의료·돌봄·생활지원 직군의 직업이 대표적인 증가 직군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초고령사회 진입, 평균수명 연장, 만성질환 증가 등으로 전문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의 구조적 수요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고용정보원은 장기 의료 수요와 요양·케어 산업이 민간 및 지역사회 기반으로 다변화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디지털 전환도 일자리를 감소시키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데이터 분석 관련 사무직, 디지털금융 및 자산관리 사무직, 경영기획·마케팅 기획 사무원 등은 수요 확대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AI와 자동화가 단순 입력·정리 업무는 줄일 수 있지만 데이터를 해석하고 전략을 세우는 직무는 강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문화·콘텐츠 분야도 성장 가능성이 있는 직군으로 꼽혔다. ‘K-컬처’의 글로벌 확산과 콘텐츠 소비 다변화에 따라 만화가·웹툰 작가, 영화·음반 기획자 등의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외국인 관광 회복과 맞물려 여행상품 개발자, 숙박시설 서비스 종사원도 증가 직업군에 포함됐다.
이에 반해 반복·단순 업무를 동반하는 직군은 일자리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됐다. 출납창구사무원, 은행사무원, 디자인·편집 보조 직무 등은 AI와 자동화 시스템 확산의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제기됐다. 저출산과 학령인구 감소로 아동·청소년 기반 직무 역시 축소 압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됐다.
이런 흐름은 국제노동기구(ILO)의 분석과도 궤를 같이 한다. ILO는 2023년 생성형 AI가 직업 전체를 대체하기보다는 일부 업무를 자동화해 기존 일자리를 보완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분석했다. 세계경제포럼(WEF) 역시 2025년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92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지만, 동시에 1억7000만 개의 새 일자리가 생겨 순증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AI 시대의 노동 핵심 쟁점이 ‘내 직업이 사라질 것인가’에서 ‘내 직무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같은 직업 안에서도 단순 반복 업무를 맡는 사람은 대체 위험이 커지는 반면, AI를 활용해 분석·기획·판단 업무를 수행하는 인력은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AI가 노동시장을 흔드는 충격 요인은 분명하지만 그 결과가 곧바로 ‘직업 소멸’로만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노동시장 대응 전략도 공포 중심의 일자리 방어에서 벗어나, 직무 전환·재교육·AI 활용 능력 강화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대환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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