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의 위기

크리스토프 엥게만 지음┃ 김인건 옮김┃헤이북스

 

AI, 책 한권도 몇줄로 짧게 요약

디지털 콘텐츠도 손쉽게 만들어

직접 책읽고 사유하는 시대 끝나

책대신 음성·영상으로 지식 습득

 

지배층의 언어였던 라틴어처럼

향후엔 문해력이 구분점될 수도

지금 시대에는 궁금한 책이 있을 때, 크게 세 가지 선택지가 앞에 놓인다고들 한다. 인공지능(AI)이 요약해준 책 정보를 읽거나, 소위 ‘북튜버’들이 올린 영상 콘텐츠를 보거나, 직접 서점에서 구매해 읽는 것이다. 어떤 것을 택할지 잠시라도 망설여본 적이 있다면, 이쯤에서 지금 시대의 ‘읽기’란 어떤 것일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AI와 유튜브의 홍수 속에서 읽기의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져 버린 시대, 왜 우리는 종이 책을 다시 집어 들어야 할까.

저자는 “종이책의 쇠퇴” “문자의 멸종”이라는 한탄에 매몰되기보다, 사람들이 종이책 대신 무엇을 찾고 있는지부터 짚어 보자고 제안한다. 전통적인 독서의 개념은 종이책과 독자가 1대1로 관계 맺는 방식이었다. 독자들은 종이책 형태로 구현된 텍스트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의미를 되새기며 이를 깊은 사유로 연결시켰다. 저자는 그러나 지금 시대에는 텍스트가 오랜 시간 확보해 온 위상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부상한 ‘구술 언어’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튜브와 팟캐스트 같은 플랫폼들은 지식을 보다 손쉽게 풀어낸 음성·영상 콘텐츠를 실어 나르면서 텍스트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때 텍스트는 대척점에 위치한 개념이 아니라, 콘텐츠의 훌륭한 재료가 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방대한 텍스트를 끊임없이 학습하고 그 결과를 실시간으로 압축해 전달하면서, 온라인의 전달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AI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리된 지식을 시청각 자료를 동원해 낭독하면서 독해력을 가진 시청자들과도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저자는 책에서 이러한 시스템을 “가상 대학”이라고 명명했다.

이들 음성·영상 콘텐츠는 텍스트가 역사적으로 지녀 온 강점까지 획득했다. 바로 ‘검색 가능성’과 ‘반복 가독성’이다. 말로 이뤄진 콘텐츠에 ‘온라인 주소’가 주어지기 시작하면서 말은 그 순간 휘발되는 것이 아니라 책처럼 두고두고 찾을 수 있는 존재가 됐다. 읽기의 대상을 더 이상 1차적인 텍스트에 한정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세계 최대의 검색 엔진은 구글이 아닌 유튜브와 틱톡이 됐다.

문제는 사람들이 점차 텍스트를 직접 읽지 않고 유튜브와 팟캐스트 속 ‘읽어주는 사람’들에게 독서를 ‘위임’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미디어학자인 저자는 독일의 26세 유튜버 레조의 사례를 든다. 2019년 5월 유럽의회 선거 직전 레조가 올린 1시간짜리의 동영상 ‘기민당(기독민주당)의 파멸’은 집권당을 정조준하면서 한 달도 안 돼 10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는 돌풍을 보였다. 그의 영상은 현상을 그저 말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촘촘한 서면 참고문헌 목록을 달았다. 시청자들은 잠재적인 독자가 돼 그가 영상 속에 제시한 텍스트들을 간접적으로 흡수했다.

레조의 사례뿐일까. 당장 스마트폰을 통해 유튜브에 접속하기만 해도 각종 인문교양, 과학 관련한 개념을 강연식으로 설명하는 콘텐츠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독자들이 수백 페이지짜리 책을 직접 집어 그 안의 지식을 머리에 욱여넣는 것보다 음성·영상 콘텐츠를 더 편하게 찾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러한 경향이 가속화할수록, 자리에 남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수는 있지만 읽지 않는 독자들’이다. 21세기 일반 대중의 보편적 문해력 획득, 도서 자료의 접근성 향상 등을 고려하면 역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텍스트는 존재하기는 하지만 시야에서 벗어나 배경으로 밀려나며, 잠재적인 독자였던 이들은 어느새 가상의 독자가 된다.

음성·영상 콘텐츠가 지식을 전달해주는 시대, 우리는 왜 여전히 텍스트를 읽어야 할까? 저자는 텍스트를 스스로 읽는 행위가 ‘새로운 라틴어의 등장’에 비견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 유럽에서 라틴어는 이를 읽을 수 있는 소수 성직자와 지배층의 권력을 보호하는 일종의 장벽으로 기능했다. 물론 지금 시대 텍스트는 배타적이거나 불투명한 존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텍스트를 읽는 것이 분석과 비판, 의견 형성이라는 노력이 수반되는 행위가 되면서 점점 더 소수에 의해서만 행해지고 있다. 점차 텍스트를 스스로 읽고 판단하는 능력이 이를 가지지 않은 이들과의 구분점으로 남게 될 수 있다는 의미다. 216쪽, 1만7000원.

인지현 기자
인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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