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 2022년 제8회 전국동시 지방선거 결과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줬다. 당선자의 12.3%나 되는 508명이 투표 없이 당선됐다. 대개 특정 정당의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서 발생한 일로, 질 것이 뻔한 정당은 후보 등록을 못 시킨 결과다. 거대 양당만이 1명씩 공천한 2인 선거구에서도 투표할 필요가 없었다. 또, 총 17개 광역의회 중 11곳에서 제1당의 의석지배율이 80%를 웃도는 일당 지배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 14일 시작돼 15일 후보등록이 끝나는 6·3 지방선거는 달라질까?

현재 한국의 지방자치는 형해화돼 있다. 지방의원과 기초단체장의 공천권은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사실상 독점한다. 국회의원의 눈에 들기 위해 줄을 서고, 공천헌금이 오가는 구태는 ‘공천이 곧 당선’인 양당제 아래 지역 독점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지역 주민의 아픔과 민생을 살펴야 할 지방 정치인들이 주민이 아닌 여의도 권력의 ‘사병(私兵)’으로 기능한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설 땅은 좁아져만 가고, 지방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무관심은 커져만 간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근본 처방으로 ‘지역정당(Local Party)’의 설립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정당 설립의 자유가 인정되나, 이른바 전국정당 조항(중앙당은 수도인 서울에 두고, 5개 이상의 시·도당과 각 1000명 이상의 당원 보유)을 충족해야 한다. 사실상 전국 규모의 정당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도록 법적 빗장이 채워져 있다. 대구나 광주 또는 순천이나 안동 등 특정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정당의 설립은 원천 봉쇄돼 있다.

지역정당은 거대 양당의 이념 대립에서 벗어나 오로지 ‘지역 민생’을 의제로 삼아 지방선거에 임한다. 우리 동네의 쓰레기 처리 문제, 보육 환경 개선, 쇠락하는 골목 상권 활성화 등 주민들의 삶에 직접 닿아 있는 ‘생활 정치’가 그 본령이 된다. 독일의 ‘자유유권자’ 그룹이나 일본의 ‘오사카유신회’가 보여주듯, 지역정당은 특정 지역의 정치 독점 구도를 깨고 정치적 경쟁력을 갖춰 시민에게 선택권을 되살려주며, 중앙 권력의 간섭 없이 지역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강력한 동력을 제공한다.

지역정당이 활성화되면 지방정치와 지방선거의 풍경이 달라질 것이다. 지역 주민과 호흡하는 참신한 인재들이 지역정당을 통해 정계에 진출하고, 지역별 일당 지배는 완화될 것이다. 무투표 당선은 대거 사라지고, ‘공천이 곧 당선’ 공식이 깨져 지방정치인들은 국회의원의 낙점보다는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더 열심히 뛸 것이다. 이는 중앙정치에 함몰된 지방자치를 구출하는 길이자, 양당 체제의 극단적인 대립을 완화하는 완충지대를 형성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번 6·3 지방선거도 거대 양당의 공천 비위와 잡음으로 얼룩지고 있다. 무투표 당선과 일당 지배도 여전할 것이다. 이런 구태와 퇴보는 이번이 끝이어야 한다. 낡은 정당법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풀뿌리 민주주의와 생활 정치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미 2023년 헌법재판관 9인 중 5인이 정당법의 전국정당 조항을 위헌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정족수 1인 부족으로 합헌 결정은 유지) 조속히 정당법을 개정해 지역정당을 허용하고 다음 지방선거 때는 이들이 지방정치를 혁신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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