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식 주필

 

반도체 누구 功인지 돌아볼 때

그룹 명운 건 이병철 1983 결단

반세기 피나는 노력과 재투자

 

자신의 성과인 양 한몫 챙기기

노조에서 정치권력까지 확산

미래도 역사도 저버린 약탈극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를 늘 마음에 새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남동 자택과 용인 에버랜드 인근의 승지원, 도쿄 등 3곳의 거처 침실에 그 말을 커다랗게 표구해 걸어놓았다. 재물에 집착하지 말라는 통상의 뜻이 아니라, 사업에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각오로 죽을 힘을 다하라는 취지였는데, 어린 손자인 이재용 현 삼성전자 회장에게 수시로 그런 얘기를 해주었다.

반도체 사업 진출, 구체적으로는 초고밀도집적회로(VLSI) 64K D램 공장 건설 계획을 밝힌 1983년 ‘2·8 도쿄 선언’도 이런 비장한 결단이었다. ‘사업보국’이 신조였던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에 이렇게 남겼다. ‘지금의 국가적 과제는 21세기를 개척할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다. 난제가 산적하다. 그러나 누군가가 만난을 무릅쓰고 반드시 성취해야 할 일이다. 내 나이 73세, 인생의 만기(晩期)이지만 백년대계를 위해 어렵더라도 전력투구를 해야 할 때가 왔다.’

기흥 일대에 공장 부지를 마련했지만, 대부분 농지와 산림·상수도보호구역, 신도시 건설 예정지로 묶여 있었다. 당시 농림부와 건설부 반대를 전두환 대통령이 나서 해결해 주었다. 박정희 정부 시절 병역특례에 더해 해외 유학까지 시켜주면서 키운 젊은 공학도들이 연구·개발의 주역이 됐다. 이들은 일본 칩들을 해체해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구조를 알아내고 새 칩을 설계했다. 미국 메모리연구소에 파견된 연수생들은 온갖 고초를 감내하며 기술을 배웠다. 회식 자리에서 애국가를 부르며 기술 자립의 꿈을 다졌다. 이 회장은 1987년 기흥 반도체 3라인 완공 직전에 타계했다. 당시 반도체 불황이 닥쳤음에도 오히려 시설을 증설하고, 마지막 사업으로 삼성종합기술원을 설립했다. 다음 해 D램 호황이 시작되면서 삼성 반도체는 도약을 본격 시작했다.

이런 초기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수많은 기여자를 제대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임직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영업이익 모두가 그들의 공(功)은 아니다. 지난 43년 역사에 비춰보면 미미하다고 생각하는 게 음수사원(飮水思源)의 올바른 자세다. 피 말리는 결단을 한 경영진, 월화수목금금금 일했던 선배 세대, 믿고 투자해준 주주들, 해외 바이어들과 장비 업체들, 반기업 규제와 정서에 맞섰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전자는 없다.

성공에는 수백 명의 아버지가 있지만, 실패는 고아라고 한다. 개념도 불분명한 ‘초과 이익’으로 한몫 챙기겠다는 ‘뜯어먹기’ 경쟁이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것을 보면, 딱 들어맞는 말이다. 노조의 성과급 고정화 요구와 파업 위협은 기폭제가 됐다. 여당의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후보는 취임 1년 내 10조 원 규모의 반도체 시설 유치를, 야당의 대구시장 후보는 제2 국가 반도체산업단지를 공약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더 나갔다. “AI 시대의 구조적 초과이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제도화할 것인가”라면서 국민배당 개념을 내놨다. 노조원을 넘어 국민 모두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취지다. 정통 경제 관료 출신마저 이런 주장을 하니, 정권 내부 분위기를 알 만하다. 책임 있는 당국자라면, 제2 제3의 삼성 반도체를 육성하기 위해 정부가 뭘 해야 할지 밤새워 고심할 것이다. 초과 세수가 생기면 나눠 먹기보다 재정 건전성과 국채 상환을 먼저 생각하는 게 도리다.(국가재정법 제90조)

이병철 회장은 ‘무노조 경영’을 고집했다. 창업 초기에 제당·섬유·비료·물산·금융 등 소비재와 서비스 산업 비중이 높았던 영향도 있겠지만, 노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최고 대우를 하겠다는 ‘인재 제일주의’ 경영철학 때문이었다. 지금 삼성과 경쟁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한결같이 그런 원칙을 견지하는 것을 보면, 수십 년 앞선 선견지명이었던 셈이다. 노동계 입장에서는 ‘삼성 침투’가 숙원이었는데, 드디어 삼성전자도 멈춰 세울 수 있게 됐다.

경영 성과는 당연히 노동자에게도 배분해야 하지만, 경영진 및 주주 판단에 맡겨야 한다. 이익의 일정 비율을 무조건 현금으로 내놓으라는 것은 경영 원칙은 물론 경제 정의에도 맞지 않는다. 회사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을 해칠 독으로 작용한다. 영업이익이 사라지면 분배 비율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용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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