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일 제주남쪽 빠져나가…화물선 6척 등 군함 3척 호위받아

北·러 군수물자 수송으로 우리 정부 제재한 화물선 레이디 R호도 포함

‘北 연계 군수물자 이송·러 함대 제재회피 선박호송’ 등 해석도

지난 9~10일 제주 남방해역을 거쳐 동중국해로 이동한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 초계함과 군수지원함 및 특수화물선 레이디 R호 등 10척의 러시아 ‘그림자 함대’. USNI 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지난 9~10일 제주 남방해역을 거쳐 동중국해로 이동한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 초계함과 군수지원함 및 특수화물선 레이디 R호 등 10척의 러시아 ‘그림자 함대’. USNI 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러시아 태평양 함대 소속 군함과 화물선 등 10척이 지난 9~10일 이틀간 한반도 인근 대마도 남쪽과 제주도 남방 해역을 거쳐 동중국해로 빠져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러시아 그림자함대의 최종 행선지와 무기 수송등으로 의심되는 선적 화물 정체에 국제사회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 군함들이 호송하는 화물선 중에는 북한의 러시아 무기 지원에 활용된 ‘레이디(Lady) R호’가 식별돼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6일 일본 통합막료감부(우리의 합동참모본부 격)와 미국 해군연구소의 ‘USNI’ 보도와 17일 인터넷매체 ‘뉴스버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의 스테레구시급 초계함(2200t급) 2척과 두브나급 군수지원함 1척, 벌크급 원양예인선 1척을 비롯한 특수화물선 6척 등 모두 10척이 일본쪽 쓰시마해협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은 해상자위대 고속 공격정 ‘시라타카’와 P-1 해상초계기를 출동시켜 감시에 들어갔다. 일본 해자대 해상 전력 감시하에 러시아 함정과 특수선박 등 10척은 제주 남쪽 해상을 거쳐 동중국해로 빠져 나갔다.

이들 초계함과 군수지원함은 함정 부호 식별 결과,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으로 드러났다.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 태평양함대가 의심 물자를 실은 특수화물선 6척을 호위한 것은,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의 해상 검문을 회피하기 위한 ‘중요 물자’를 선적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USNI가 일본이 촬영한 특수화물선 사진을 분석해 6척 중 5척의 선명을 확인했으며, 특히 5척 가운데 북·러 무기 수송에 사용된 ‘레이디 R호’라는 낯익은 이름이 식별됐다.

북한에 무기를 수송한 혐의로 미국의 제재를 받은 러시아 화물선 앙가라호. 이와 유사한 러시아의 레이디 R 화물선이 북한 나진항에 정박한 모습이 2025년 6월 포착된 데 이어 지난 9!10일 제주 남방해역을 거쳐 동중국해로 진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NK 뉴스 캡처
북한에 무기를 수송한 혐의로 미국의 제재를 받은 러시아 화물선 앙가라호. 이와 유사한 러시아의 레이디 R 화물선이 북한 나진항에 정박한 모습이 2025년 6월 포착된 데 이어 지난 9!10일 제주 남방해역을 거쳐 동중국해로 진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NK 뉴스 캡처

레이디 R호는 2024년 4월 다량의 컨테이너를 싣고 러시아와 북한을 오가며 군수물자를 운송해 했다는 이유로 우리 정부에 의해 제재 리스트에 오른 선박이다.

이 선박은 지난 4월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NK뉴스가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러시아와 인접한 북한 나선항 부두에 정박한 것이 포착되기도 했다. 나선항은 레이디 R호가 지난 2023년부터 북한 무기를 실어 나른 것으로 의심되는 다른 러시아 선박 3척과 함께 이용해온 곳이다. NK뉴스는 레이디 R호의 나선항 입항은 북한과 러시아 간 불법 무기 거래가 계속되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레이디 R호와 함께 식별된 마이아(Maia) 1, 레이디 D, 레이디 마리아(Mariia)호도 러시아 무기와 탄약을 운송한 혐의로 미국 등으로부터 제재를 받은 적이 있다.

러시아는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제재로 원유 수출길이 막히자 관리가 부실하거나 다른 나라 선박으로 위장한 선단을 이용해 국제사회의 추적을 피해 원유를 몰래 수출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은 이들 선단을 ‘그림자 함대’(shadow fleet)라고 부른다. 그림자 함대는 러시아가 제재를 피해 원유·군수물자 등을 수출하는 데 이용하는 유조선·운반선·특수화물선 등을 일컫는다. 선박의 위치추적장치(AIS) 신호를 끄거나 조작하고, 국적이나 소유자를 숨겨 제재를 회피하는 수법을 쓴다.

미국 정부는 대러제재 회피용 밀수 함선인 ‘그림자함대’에 대한 대규모 제재를 발표한 바 있다. 그림자함대는 러시아 뿐만 아니라 이란과 북한 등 국제사회의 제재로 정식 교역이 불가능한 국가들이 운영하는 밀수 선박을 통칭하는 용어다. 현재는 러시아 석유를 밀수하는 수백척의 유조선들이 대규모 그림자함대를 구성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23년 4월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 그림자함대는 300~600척 규모의 유조선으로 구성돼 있으며 대부분 노후 함선들로 최근 선박검사를 받지 않았고 유지관리도 열악하며 소유권도 불분명하다.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둠의 함대(Dark Fleet)’라고도 불린다”고 밝힌 바 있다.

대러 제재를 주도하는 유럽연합(EU) 등은 그림자 함대 명단을 제재 리스트에 꾸준히 추가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 2025년엔 러시아 선박 70척 그림자 함대에 추가해 제재 대상에 올려놨다.

러시아 ‘그림자함대’ 이동 경로. 일본 통합막료감부 홈페이지 캡처
러시아 ‘그림자함대’ 이동 경로. 일본 통합막료감부 홈페이지 캡처

러시아 태평양함대가 이번 ‘그림자 함대’ 호송에 관여한 것은 이 함대의 역할이 태평양 인근 초계와 방어라는 전통적인 임무에서 제재 회피 선박을 호송하는 역할까지 확대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USNI는 “러시아는 과거 해군 소속의 화물선, 국영 선박, 시리아에 대한 러시아 보급 임무 등 군사 작전을 지원하는 용선 민간 선박을 호위했는데 이 임무는 2024년 시리아 정부 붕괴로 종료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러시아 해군 함정들은 최근 영국과 유럽 국가들의 그림자 함대 소속 또는 의심 선박 나포 공동 작전에 대응해 비군사 및 비국영 선박을 호위하고 있다”고 USNI는 전했다.

전문가들은 태평양과 인도양, 대서양 등 전역에서 러시아 그림자 함대가 출몰하는 것에 대해 해상을 이용해 군수물자나 원유를 환적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영국 BBC는 지난해 11월 러시아 석유 산업을 떠받치는 것은 “저렴한 가격의 석유를 찾는 전 세계 구매자들에게 제재도 뚫고 수백만 배럴씩 운송하는, 이른바 ‘유령’ 혹은 ‘좀비’ 유조선으로 구성된 그림자 함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북한산 군수물자를 해상에서 제3국 선박으로 환적하는 북·러간 새로운 해상협력 차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북한과 러시아가 탄약, 포탄, 미사일 부품, 공작기계, 석유제품 등을 해상으로 이동시키는 최근 흐름과 무관치않다는 것이다.

정충신 선임기자
정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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