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선의 한국문화 ‘논란의 초상들’

(15) 배우 최진실의 분투와 좌절

 

21세에 삼성전자 CF로 주목 받은 뒤 드라마·영화 줄줄이 히트

멜로 연기는 애틋하고, 코미디선 사랑스럽고, 가족극은 정겨워

 

집안에 소홀한 아버지탓 가난에 고통… “수돗물로 배 채우기도”

야구선수 조성민 구애 끝 결혼했지만 불화·폭행으로 끝내 파경

 

자신의 삶 담긴듯… ‘장밋빛 인생’ 시한부 주부역할 재기했지만

“사채 주고 독촉” 루머 시달려… 40세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 떠나

최진실은 귀엽고 상큼한 이미지의 얼굴임에도 눈이 깊어 슬픔을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40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약 20년 동안 CF, 드라마, 영화에서 크게 활약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최진실은 귀엽고 상큼한 이미지의 얼굴임에도 눈이 깊어 슬픔을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40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약 20년 동안 CF, 드라마, 영화에서 크게 활약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잖아요. 하루도 생각이 나지 않는 날이 없어요. 5월엔 가족과 관련한 날이 많으니 더욱 그렇지요. 뭘 좋은 걸 보거나 맛있는 걸 먹을 때마다….”

고 최진실(1968∼2008) 배우의 어머니 정옥숙(81) 씨는 이렇게 말하며 목이 메었다. 정 씨는 딸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가까워 오는데도 아직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고맙다고 했다.

최진실은 생전 ‘만인의 연인’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40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20년 동안 CF, 드라마, 영화에서 정상급 스타로 활약했다.

그는 21세 때인 1989년 삼성전자 CF에 등장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광고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 섭외가 잇따랐다. ‘약속’(1992), ‘질투’(1992), ‘폭풍의 계절’(1993), ‘별은 내 가슴에’(1997), ‘그대 그리고 나’(1997) 등 그가 나온 드라마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영화 쪽에서도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마누라 죽이기’(1994), ‘편지’(1997) 등을 히트시켰다.

사회성 짙은 작품에도 기꺼이 출연했다. ‘남부군’(1990),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1991),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 등이 그것이다.

“다크서클도 매력 요인”

그는 소탈하고 겸손해서 대중에게 친근한 느낌을 줬다. 그가 멜로를 하면 애틋했고, 코미디에 나오면 사랑스러웠으며, 가족 드라마에 출연하면 정겨웠다.

귀엽고 상큼한 이미지의 얼굴임에도 눈이 깊어서 묘한 느낌을 준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대해 그는 “어렸을 때 많은 일을 겪어 눈빛에 희로애락이 스민 것 같다”고 했다. 눈 밑의 다크서클도 연기에 깊이를 더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그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독한 가난을 딛고 스타로 발돋움해서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뿌렸기 때문이다. “가난 때문에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나는 한 번도 내 꿈을 잊은 적이 없다. 불우한 환경 탓에 드러내 놓고 말은 못 했으나 내 꿈은 영화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최진실이 1998년 펴낸 자서전을 보면, 가슴이 절로 아릿해진다. 소녀 시절 가난의 고통을 넘어서기 위한 그의 분투가 너무도 눈물겹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학교에 도시락을 싸 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 수돗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고 되돌아봤다. 학교서 간식을 받으면 반을 남겨서 동생(최진영·1970∼2010)에게 갖다 줬다. 그 가난의 원천은 아버지의 무책임이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아버지가 자녀 양육에 자신의 뼈를 갈아 넣었으나, 간혹 가부장제에 기생해서 가정 돌보기를 소홀히 하며 외도를 일삼던 자들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중 하나였다. “나는 내 인생 살 테니 너희는 너희 인생 살아라.” 그가 고교 때 아버지가 아예 집을 나가며 한 말이다.

이후 어머니 정옥숙은 식당을 꾸리거나 화장품 외판원을 했지만 번번이 손해만 봤다. 포장마차는 어느 정도 됐으나, 거리 정화로 철거되고 말았다. 월세를 내지 못하자 주인집에서 “정말 미안한데 나가 달라”고 해서 세 식구가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뭉쳐 살았지만, 애옥살림의 고통은 여전했다. 헤어져 있을 때 막노동까지 했던 동생 진영은 세상살이에 일찍 눈을 떠 고교생 때 광고 모델로 데뷔했다. 육촌 형이었던 배우 최재성의 도움이 있었다. 그림에 소질이 있던 최진실은 미대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가정 형편 탓에 뜻을 접었다. 대신에 동생을 따라 광고 모델 쪽에 진출해 단역을 맡았다. 어렸을 때부터 진영과 함께 극을 꾸며서 남에게 보여 주기 좋아했던 터라 적성에 맞았다.

1989년 최진실의 CF 출세작.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대사를 유행시켰다.
1989년 최진실의 CF 출세작.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대사를 유행시켰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

그가 광고 스타로 뜬 것은 박경삼 CF 감독의 안목 덕분이었다. 박 감독은 배우 김희애 주연의 화장품 광고를 촬영하며, 조연이었던 최진실을 눈여겨봤다. 예외적으로 조연 얼굴을 클로즈업시키며, “너는 잘될 것”이란 격려도 해 줬다. 이후 클로즈업된 그의 얼굴을 보고 삼성전자 광고 제작팀에서 연락해 왔다. 그때 찍은 비디오플레이어 CF는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대사가 유행어가 될 만큼 히트했다. 이후 광고, 드라마, 영화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간혹 태클이 걸리기도 했다. 영화 ‘숲속의 방’(1992)이 평단의 혹평을 받고 나서였다. 원작 소설을 각색했던 작가가 자신의 단편 소설에 이 영화를 언급하며 “주인공 여대생 역을 맡았던 여배우가 고졸 콤플렉스 탓에 촬영 펑크를 냈다”고 저격한 것이다. 주역을 맡았던 최진실은 나중에 자신이 대학생 캐릭터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러 펑크를 낸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당시 무리한 스케줄 탓에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그 작가처럼 명문대 다닌 사실을 코에 걸고 다니는 일부 지식인의 엘리티즘이 얼마나 경박한지를 드러낸다.)

1994년 매니저였던 배병수가 살해된 사건은 최진실에게도 큰 충격을 줬다. ‘꽁지머리’로 유명했던 배병수가 자신의 부하 직원이자 최진실의 로드매니저였던 전용철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때 최진실 연루설이 나돌았다. 사건 이전에 배병수와 계약 관계를 청산했는데, 그 이면에 뭔가 있다는 추정이었다. 수사 결과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위기를 벗어난 최진실은 자서전을 통해 “업계에서 배병수 이미지가 나빴다고 해도 내겐 은인이었다”고 추모했다. 개런티 인상 요구 등의 악역을 대신 담당해 줬다는 것이다.

최진실에게 진짜 위기는 야구 선수 조성민(1973∼2013)과의 결혼으로 불거졌다. 고교 시절부터 최진실 팬이었던 조성민은 1998년 방송에서 처음 만난 후 끈질기게 구애한 끝에 2000년 가정을 이뤘다. 둘 사이에 1남 1녀를 낳았는데, 조성민이 야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며 불화가 생겼다. 유흥업소 여성 사장과 연인 관계가 되었던 탓이다. 그걸 비난하는 최진실을 폭행한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아내가 도리어 ‘유책 배우자’라며 사치와 허영 등을 거론했다. 그는 이 거짓 발언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최진실은 자녀들을 생각해서 이혼을 피하려 애썼으나, 조성민의 거듭된 폭행 등으로 한계를 느껴 2004년 갈라섰다.

최진실의 딸 최준희(오른쪽) 씨가 16일 결혼식에서 오빠 환희 씨와 입장하는 모습.  SNS캡처
최진실의 딸 최준희(오른쪽) 씨가 16일 결혼식에서 오빠 환희 씨와 입장하는 모습. SNS캡처

‘장밋빛…’으로 재기했지만

최진실은 이 과정에서 슬럼프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05년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서 신들린 듯한 연기로 재기에 성공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부 역할이었다. 연출자 김종창은 “최진실은 연기라기보다는 자기 삶처럼 온몸으로 보여 줬다”고 했다.

2008년엔 OBS 예능 ‘최진실의 진실과 구라’를 개그맨 김구라와 함께 진행했다. 여기서 그는 산전수전 겪은 엔터테이너답게 여유 있는 진행 솜씨를 과시한다. 그런데 그해 10월에 그가 스스로 목을 매어 세상을 버렸음을 생각하면, 그 여유는 불행의 마수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경 안정제를 복용하면서도 티를 내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 보려는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같은 해에 촬영한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촬영장에 가장 먼저 오고 직접 도시락을 싸 갖고 와서 먹은 후 늦은 밤까지 대본을 들고 중얼중얼 연습을 했다.

배우 안재환(1972∼2008)이 그해 9월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최진실을 다시 벼랑 끝으로 몰았다. 안재환에게 거액의 사채를 빌려준 그가 상환을 독촉했다는 루머가 나돌았던 탓이다. 한 증권사 여직원이 장난삼아 퍼트린 것이었는데, 이게 인터넷에 독버섯 같은 악플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엄마, 사람들이 나를 사채업자래.” 어머니에게 하소연하며 흐느꼈던 최진실은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 지옥 같은 곳을 떠나지 못한다는 게 너무도 한심하다.”

지옥 같은 세상에서의 치욕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떠날 것을 예감했기 때문일까. 그는 두 아이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엄마랑 외삼촌이 우애가 좋았던 것처럼 환희랑 수민이(‘준희’의 개명 전 이름)도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서로 의지하고 아껴 주며 살았으면 해. 고맙다. 환희야 수민아.”

최진실이 간절하게 당부한 것처럼 두 아이는 20여 년을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다. 지난 16일 23세 준희의 결혼식장에서 25세의 환희가 혼주 역할을 함으로써 하늘에 있는 어머니에게 그 도타운 우애를 보여 줬다.

1990년 동생 최진영(왼쪽)과 함께.
1990년 동생 최진영(왼쪽)과 함께.

■ 최진실이 남긴 것

‘부당 친권승계 제동’ 법개정 계기 만들어… 지인들 “그의 온기 그립다”

최진실의 비극은 가수이자 배우였던 동생 최진영이 2010년 스스로 삶을 마감하면서 되살아났다. “동생이라기보다 동지로 부르고 싶을 때가 있다. 가난이라는 긴 터널을 함께 헤쳐 온 동지.” 최진실이 생전 이렇게 의지했던 진영은 누나가 없는 세상을 겨우 2년 견디고 떠났다.

전남편 조성민도 2013년에 유서를 남기고 생을 끝냈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 모두 만 39세였다.

이들의 요절 이유에 대해 갖가지 분석이 있으나, 대부분 추정에 의한 것이다. 그 추측으로 설왕설래하기보다 독한 운명에 꺾이기까지 그들이 분투했던 흔적과 그 의미를 어루만져 주는 것이 동시대인의 도리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최진실이 남긴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역시 ‘얼굴 없는 살인자’ 악플러들을 어떻게 추방할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진실 타계 직후 국회는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추진하다가 중단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이후 대한민국은 악플러에겐 천국, 그 공격을 받는 이들에겐 지옥으로 존재해 왔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익명 속에 숨어 비겁하게 타인을 찌르고 베는 말의 독검을 줄일 수 있을까.

두 번째는 부적격한 부모의 자동 친권 승계를 막는 민법 개정안, 이른바 ‘최진실 법’의 의미에 대해서다. 2010년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이 개정안은 최진실 사망 후 조성민이 친권 승계를 요구하자 재산 상속과 관련해 논란이 일며 상정된 것이다. 최진실은 생전 친권 자동 승계 조항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바 있는데, 그의 뜻이 반영된 셈이다. 그는 싱글맘으로 살 때 두 자녀의 성(姓)을 조 씨에서 최 씨로 바꿨다. 2008년부터 시행된 자녀의 성·본 변경허가 제도에 따른 것이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가부장제에 기생한 아버지와 전남편으로부터 겪은 고통을 끊기 위해서였다.

최진실이 남긴 것의 으뜸은 역시 ‘온기’다. 그는 드라마 스태프들을 집으로 불러 음식을 해 주고, 자신을 인터뷰한 리포터 홍진경의 밥을 챙겨 준 사람이었다. 홍진경은 그때부터 최진실을 언니로 불렀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엔 그 자녀들의 ‘이모’로 벗바리가 돼 줬다.

연예계에서 최진실과 가까웠던 이들은 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힘들어했으나, 세월이 흐르며 그의 온기를 그리워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모델 이소라는 최근 가수 이효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고인을 애틋하게 추억했다. “너는 진실이 언니를 닮았어. 정의롭고 강강약약(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다는 뜻)이라는 점에서.”

장재선 전임기자
장재선

장재선 전임기자

인물·조사팀 /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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