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희 베이징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北京)을 찾았다. 지난 2017년 이후 9년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머문 2박 3일 동안 2017년 첫 방중 당시를 떠올렸을 것이다. 당시 그는 자금성 안에서 만찬을 하는 등 이전 그 어느 미국 대통령도 받아보지 못한 ‘황제급 의전’을 경험했다. 2026년 베이징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화려한 공개 이벤트는 줄었고, 일정 대부분은 정상회담과 업무 오찬 등 실무 일정으로 채워졌다. 자금성의 화려함 대신 중난하이(中南海)의 정치적 상징성이 부각됐다.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 대신 중국 권력의 심장부인 중난하이로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한 것은, 미·중이 세계 질서를 함께 관리해야 하는 대국 관계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읽힌다.

양국 정상의 발언에서도 9년 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중국의 높아진 자신감과 미·중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2026년을 새로운 대국 관계의 이정표가 되는 해로 만들자”면서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를 제시했다. 미국과 중국이 대등한 입장에서 갈등을 관리해 안정을 구축하자는 메시지다. 특히, 비공개 회담에서 “대만 문제를 잘못 처리하면 양국은 부딪치거나 충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7년에도 시 주석은 대만 문제를 언급했지만, 이번처럼 트럼프 대통령 면전에서 ‘충돌 가능성’을 직접 거론한 것은 수위가 한층 높아진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위대한 지도자”라고 시 주석을 추켜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와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팀 쿡, 일론 머스크 등 미국 기업인을 대거 대동해 방중했고, “이들은 당신과 중국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왔으며 무역과 비즈니스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는 아첨했고 시진핑은 단호했다”고 평했다.

이번 방중에서 공개 이벤트가 줄어든 것을 단순히 “성의가 부족해졌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미·중 관계의 성격 자체가 달라졌다는 신호에 가깝다. 2017년 중국이 ‘관계 개선 가능성’을 과시하려 했다면, 이번에는 ‘관리 가능한 경쟁’이라는 현실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중국의 자신감이다. 9년 전 중국은 미국 시장과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고, 미·중 관계 개선이 절실했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인공지능(AI) 제재와 관세 압박 속에서도 희토류 공급망, 제조업 경쟁력, 글로벌 사우스 외교를 기반으로 버틸 힘을 키웠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상호관세를 부과하며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약화시킨 것은 중국에 기회로 작용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호기롭게 시작한 이란 전쟁은 장기화하고 있다.

중국 인터넷 일각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촨젠궈(川建國)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식 표기인 촨푸(川普)와 건국(建國)을 합친 말로, 직역하면 ‘국가 건설자’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결과적으로 중국을 더 강하게 만들고 있다는 조롱 섞인 표현이다.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섰다고 판단하는 중국의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어 보인다.

박세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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