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현대-요코하마미술관 ‘로드 무비:1945…’ 展
북송작가 조양규의 1950년대作, 시대상 맞물려 남다른 울림
1964년 백남준의 협업 뒤 본격 교류… 국교 정상화 후 ‘날개’
日에 소개된 박서보·이우환 회화, 이불 작가 초기작 등 눈길
2000년대 이후엔 전인류 위기의식 함께 다루며 ‘연대’ 모색
세계적인 팝아트 작가이자, 국내에도 팬덤이 두꺼운 무라카미 다카시. 지금은 K팝 스타나 유명 패션브랜드와의 협업에 1순위로 호명되는 작가지만, 1990년대 초 동료 작가인 나카무라 마사토와 함께 한국에서 2인전을 열 때만 해도, ‘무라카미’는 ‘한국인들이 불쾌함을 느끼는 일본 이름’ 2위였다고 한다. 1위는 ‘나카무라’. 이를 비틀어 탄생한 전시가 1992년 서울 클럽 오존의 ‘나까무라와 무라까미’전이다. 질곡의 역사가 만들어낸 ‘불쾌한 감각’을 새로운 예술적 경험으로 전이시킨 것. 전시는 도쿄, 오사카로 이어지며 동시대 한·일 청년 작가들의 만남과 협업을 촉발하게 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 요코하마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전시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에는 나카무라와 무라카미의 ‘모험’과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1945년부터 현재까지 80년간 이어온 두 나라 미술 교류의 여정을 되짚어 보는 전시는 한 편의 ‘로드무비’같다. 등장인물은 40명이 넘는다. 그 안에 나카무라와 무라카미가 있고, 1964년 도쿄에서 피아노를 부순 백남준과 그를 촬영한 사진작가 히라타 미노루가 있고, 북송된 재일작가 조양규가 있고, 일본의 미술운동 모노하를 일으킨 이우환이 있다.
전시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요코하마미술관에서 ‘항상 옆에 있으니까 일본과 한국, 미술 80년’이란 제목으로 먼저 선보였고, 지난 14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국내 관람객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출발점은 해방 이후 일본에 남은 재일조선인 예술가들이다. 일제강점기와 남북 분단이 개인의 삶과 예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볼 수 있다. 특히, 1960년대 북송돼 행적이 묘연한 조양규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작가는 명문 무사시노 미술대를 다니며 노역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1957년 작 ‘밀폐된 창고’는 노동 현장의 어둡고 폐쇄적인 공간을 묘사했는데, 시대상과 작가의 삶이 오버랩되며 보는 이를 먹먹하게 만든다.
백남준과 일본 전위예술가들의 교류가 시작되면 분위기가 바뀐다. 백남준이 일본 전위미술 그룹 ‘하이레드 센터’와 함께 한 개인 방공호 제작 퍼포먼스 ‘쉘터 계획을 위한 인체 전개도 사진’(1964)을 비롯해 아내인 구보타 시게코와 함께 방한해 성묘하는 모습이 담긴 한국 여행 비디오도 흥미롭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엔 미술 교류도 본격화한다.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의 ‘한국현대회화전’ 자료와 함께 박서보, 이우환, 하종현 등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박서보와 이우환의 교류, 명동화랑과 도쿄화랑을 중심으로 형성된 작가 네트워크도 눈길을 끈다. 1970∼1980년대의 흐름을 주도한 ‘대구현대미술제’와 ‘국제임팩트아트페스티벌’이 어떻게 국제 예술 교류의 장이 되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이 시기 유독 인상 깊은 작품들이 많다. 에비즈카 고이치의 ‘조응-1977년 7월 대구의 여운’은 한국의 방바닥을 상징하는 누런색 장판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1990년대 이후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한·일 양국에서 떠오른 이불 작가의 초기작을 만날 기회다. 그는 ‘한·일 행위예술제’를 통해 일본으로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했는데, 이번 전시에 나온 ‘사이보그 W5’는 당시 활동하던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감각을 보여준다. 제목이 주는 미래적 이미지는 매끈한 질감으로 형상화되지만, 머리와 팔다리가 결여된 불완전한 형태가 당시의 불안한 시대상과 겹쳐진다.
2000년대 이후 양국 예술가들은 동일본대지진, 재일조선인, 역사 인식 등 두 나라가 공유하는 공동체와 차별, 상처를 다룬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한 양국 미술계가 이제 전 인류적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삼아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다나카 고키가 1923년 간토대지진부터 일본 내 최근 지속되는 한국인 혐오 시위까지를 들여다보는 ‘다치기 쉬운 역사들’(2018), 정연두 작가가 일본의 재난사를 조심스럽게 다룬 ‘마술사와의 산책’(2014) 등이 대표적이다.
요코하마미술관에서 이 전시는 예상보다 1만 명 많은 3만7000여 명이 관람했다. 이 미술관의 다른 전시에 비해 20∼30대 젊은 관객이 많았다. 한국 전시를 위해 방한한 구라야 미카 요코하마미술관 관장은 “두 나라는 서로 잘 아는 것 같지만 잘 모른다. 이사도 못 가고 계속 이웃으로 있을 텐데, 예술가들이 주고받은 우정과 영향의 여정을 봐 달라”고 말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역시 “두 나라가 경험한 역사적 순간과 그 속에서 형성된 미술 교류의 흔적을 되짚는 전시다. 한·일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 관람료는 3000원.
박동미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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