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윤 작가 신작…알래스카 대자연 속 두 순록의 동행

레이어링 페이퍼 기법으로 5년간 빚어낸 숭고한 연대의 메시지

알래스카의 척박한 대자연, 수천년 이어져온 순록의 길이 인간의 거대한 송유관에 의해 끊어졌다.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진 숲에서 가족을 잃고 떠도는 ‘야생 순록’과 인간의 울타리 안에서 안락하게 살아가는 순록 ‘버드’. 두 순록의 만남은 안락함과 자유, 그리고 생명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영미권과 이탈리아 등 국제무대에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인정받고 있는 허정윤 작가의 신작 그림책 ‘순록의 태풍’(글로연)이 출간됐다. 책은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두 마리의 순록을 통해 인간사회의 규범과 자연의 법칙 사이의 간극을 비춘다. 매일이 불안한 야생 순록은 버드에게 자신도 ‘이름’을 갖고 싶다고 청한다. 하지만 이름을 갖는 순간 다시는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아는 버드는 쉽사리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다.

이야기의 변곡점은 포식자의 위협 앞에서 무리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소용돌이 ‘순록의 태풍’을 목격하면서 시작된다. 강한 개체들이 바깥에서 거친 원을 그리고, 가장 약하고 어린 존재들을 그 중심에 두어 보호하는 이 움직임은 단순한 방어본능을 넘어선다. 작가는 이를 “가장 빠른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가장 완전하게 협력하는 자들이 살아남는 세계”라고 표현한다.

무엇보다 시각적 구현이 돋보인다. 허 작가는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종이를 수없이 자르고 겹겹이 쌓아올리는 ‘레이어링 페이퍼’ 기법을 통해 순록의 여정을 입체적으로 빚어냈다. 종이의 층에 따라 더해지는 빛과 그림자의 연출이 깊이감을 극대화하고 연출이 살아난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이름을 넘어선 존재의 의미를 사유하게 된다. 덧대여진 종이만큼이나 깊이가 있는 철학적인 그림책이다. 42쪽, 2만8000원.

신재우 기자
신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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