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조선 후기 ‘책 읽는 여성 군자’로 이름난 사주당 이씨는 1800년 조선 최초의 태교서 ‘태교신기’를 썼다. 조선과 중국의 문헌을 바탕으로 네 자녀를 키운 경험을 결합해 태교의 마음가짐과 방법을 정리한 책이다. 사주당은 “어머니의 열 달 태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버지의 정심(正心)”이라며, 태교를 아내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남편과 가정, 나아가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일로 보았다고 한다.

조선 중기 문인 금난수는 열혈 아버지였다. 그의 ‘성재일기’에는 네 아들의 독서, 과거 준비, 스승 찾기 과정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그는 아들의 학업을 직접 챙기고 시험장에 동행하기도 했다. 필요한 책은 빌려오거나 몇 달에 걸쳐 손수 베껴 썼다. 좋은 스승을 찾아 배우게 하는 일도 아버지가 맡았다. 유교 가부장제 아래 조선에서도 자녀를 키우는 일은 어머니 혼자만의 몫이 아니었다.

‘자녀는 엄마가 돌봐야 한다’는 말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복지패널 73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 18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어린 자녀는 집에서 엄마가 돌봐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는 응답은 33.83%에 불과했다. 2007년 64.7%에서 절반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반면, ‘엄마 돌봄’에 반대는 34.12%로 찬성을 앞질렀다. 2007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반대가 찬성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돌봄의 사회화’가 사회적 상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인식 변화에 한참 못 미친다. 지난해 12월 국가데이터처 발표에 따르면 아버지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사상 처음으로 10%를 넘어 10.2%를 기록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어머니 84.5%와는 여전히 차이가 크다. 출산을 경험한 30대 여성의 경력단절 확률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14%포인트 높다.

돌봄의 국가 책임 서비스를 내걸고, 만 12세까지 아동을 대상으로 돌봄 인력을 집으로 보내주는 ‘아이돌봄 서비스’는 평균 한 달 이상, 지역에 따라 반년을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클로디아 골딘은 한국 저출산 문제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한국은 남녀 간 돌봄 시간 격차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중 하나”라고 답했다. 상식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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