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형 정치부 차장
요즘 기자들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 대해 매일 같은 질문을 한다. “장관님은 축구 경기에 가십니까?”
정 장관이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과 수원FC의 경기를 관람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지만, 기자들이 확인을 거듭하고 있다. 이번 경기가 2018년 이후 약 7년 5개월 만의 북한 선수단 방남인 만큼 장관의 참석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기자들이 장관의 일정을 집요하게 확인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정 장관의 행보가 ‘검토 중’이 ‘안 가는 쪽으로 가닥’이 되고, ‘가닥’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수차례 경험했다. 믿고 썼다가 낭패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을.
불신의 이력은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 장관은 방송에 출연해 경주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미국과 북한은 대화 준비가 돼 있다”고도 밝혔다. 정보기관 분석까지 인용했으니 꽤 공신력이 있어 보였다. 회담 장소로 판문점 북측 판문각까지 특정했다. 그러나 APEC 정상회의는 열렸지만, 미·북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지난 1월에는 정 장관이 ‘한반도 평화특사’로 중국 방문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정 장관 본인도 이를 공식 확인했다.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이지 구경꾼이 아니다”라며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베이징행은 없었다.
지난달 정 장관은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그 시기든 그 이후든 반드시 북·미 회동이 이뤄지도록 노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반드시’라는 단어까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이 끝난 후 전문가들은 한반도 문제가 후순위로 밀렸다고 진단했다. 깜짝 미·북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 장관이 던진 희망 발언은 계속 어긋나고 있다. 결과를 예측하기 쉽다는 면에서는 대단히 안정적 외교다. 성과만 빼고 말이다. 자그마한 희망을 단초로 미래를 위해 차근차근 나아가야 한다는 면에서는 그 시도를 가볍게만 볼 수는 없다. 단기간에 성사되지 않은 외교적 시도 하나하나가 모여 큰 성과를 내기도 한다.
문제는 정 장관의 발언이 양치기 소년의 구호처럼 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직 통일부 장관이 방송에서, 국회에서, 기자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내놓은 전망은 언론사들이 보도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대한민국 모든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국민은 그것을 사실처럼 소비한다. 나중에 틀렸다는 후속 보도가 나오지만, 그때는 모두 관심을 저버린 후다.
이재명 대통령은 “인면수심의 가짜뉴스는 엄벌해 마땅하다”고 했다. 국회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까지 통과시켰다. 언론사가 취재 과정에서 사실 확인을 소홀히 해 오보를 냈다면 징벌적 배상을 물리겠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장관이 확인도 안 된 외교 시나리오를 공개 석상에서 흘리고, 언론이 충실히 보도해 결과적으로 오보가 됐을 때,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정보의 출처는 장관인데 칼끝은 언론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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