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26년 5월 20일, 한국 HMM 소속 초대형 유조선 유니버설 위너호가 원유 200만 배럴을 싣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울산으로 향했다. 미국·이란 전쟁 이후 사실상 첫 한국 유조선 통과 사례였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진짜 의미는 단순한 항해 성공에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통과가 한국 정부와 이란 측의 협의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 벌크선 나무호 피격 이후 한국 정부는 자국 선박 보호와 안전 통과를 위해 직접 외교 협상과 위기관리에 나서야 했다. 이는 오늘날 호르무즈 해협이 더 이상 자동적으로 안전이 보장되는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재 미국과 이란은 종전 및 핵협상을 병행하고 있지만, 동시에 미국은 항모강습단과 ISR(정보·감시·정찰) 자산을 유지하고 있고, 이란 역시 해협 통제 가능성을 계속 과시하고 있다. 전쟁은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압박은 계속되고 있으며, 바다는 열려 있지만 누구도 완전히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금의 경쟁은 과거식 전면 봉쇄나 대규모 해전과는 다르다. 오늘날의 경쟁은 해협 전체를 완전히 닫는 방식보다, 흐름 전체를 지속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고 선택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결국 지금 호르무즈 해협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미국과 이란의 군사력이 아니다. 그것은 질서를 유지하려는 힘과, 그 질서를 흔들려는 힘 사이의 장기적 경쟁이다. 그리고 이번 한국 유조선의 통과는 바로 그 새로운 흐름전쟁의 구조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I. 호르무즈 해협은 왜 아직 닫히지 않았는가
많은 사람들은 봉쇄를 “완전히 막힌 상태”로 이해한다. 해협에 기뢰가 부설되고, 군함이 침몰하며, 모든 선박 운항이 중단돼야만 비로소 봉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2026년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서 나타나는 상황은 이러한 전통적 봉쇄 개념과 상당히 다르다.
실제로 지금 호르무즈 해협은 완전히 닫혀 있지 않다. 일부 LNG선과 유조선, 벌크선은 계속 이동하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 선박들 역시 이란과의 협의를 거쳐 제한적으로 통과하고 있다. 미국 역시 “항행의 자유”와 국제 해상질서 유지를 계속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협이 안정된 공간이 된 것은 아니다. 보험료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일부 선사들은 우회 항로를 검토하고 있다. AIS(선박자동식별장치)를 끄고 이동하는 선박들도 증가하고 있으며, 해운업계 내부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을 “열려 있지만 안심할 수 없는 바다”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지금 이란이 추구하는 방식이 과거식 전면 봉쇄와 다르다는 점이다. 이란은 해협 전체를 완전히 닫지 않는다. 대신 언제든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 한다. 그리고 바로 그 불확실성 자체가 국제 시장과 해운 시스템 전체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반면 미국 역시 단순한 전면 공격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항모강습단과 ISR 자산을 통해 해상질서를 유지하려 하지만, 동시에 이란과의 전면전 확대 역시 경계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종전 협상과 핵협상을 병행하면서도 군사 옵션을 계속 유지하는 방식으로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결국 지금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두 개의 전략이 동시에 충돌하고 있다. 미국은 해협을 완전히 열어 글로벌 에너지 흐름과 해상 교통로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제한적 위협과 선택적 압박을 통해 해협 전체를 지속적으로 불안정한 공간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문제는 어느 한쪽도 완전한 승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해협 전체의 불안정을 제거하지 못하고 있고, 이란 역시 미국 해군의 존재 때문에 전면 봉쇄를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오늘날의 호르무즈 해협은 “열려 있지만 불안정한 상태” 자체가 유지되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지금의 경쟁 핵심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전체 흐름을 얼마나 오랫동안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가에 있다. 선박 한 척을 침몰시키는 것보다, 보험료와 위험 프리미엄을 상승시키고 국제 시장 전체를 지속적으로 흔드는 것이 더 큰 전략 효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 해협 통제는 단순한 물리적 봉쇄가 아니라, 흐름 전체를 비싸고 불안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현재 호르무즈 해협이 보여주는 새로운 형태의 해양 전략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II. 한국 유조선은 왜 지금 통과할 수 있었는가
이번 유니버설 위너호의 통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단순히 “한국 선박이 지나갔다”는 사실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통과가 이란 측과의 협의와 승인 구조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과거 국제해협은 누구나 자유롭게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 호르무즈 해협은 다르다. 바다는 열려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군사력과 외교, 위험관리와 정치적 협상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면서 “누가 얼마나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는가”를 결정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례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일본과 한국의 차이다. 일본은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이란과 외교 채널을 유지하며 자국 선박 문제를 관리해 왔다. 반면 한국은 나무호 피격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상황 관리에 들어갔고, 이후 외교부와 해운업계, 정보기관이 함께 움직이며 해협 내 한국 선박 보호와 통과 협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 외교 문제가 아니다. 사실상 에너지 안보와 국가 생존 문제에 가까운 대응이었다. 실제로 한국은 원유와 LNG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따라서 해협의 불안정성은 단순한 국제 뉴스가 아니라 한국 산업과 경제 전체의 위험으로 연결된다.
특히 나무호 피격 사건은 한국 사회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글로벌 해상 교통로의 안정성’이 더 이상 자동적으로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한국 관련 선박이 실제 공격 정황 속에서 피해를 입었고, 이후 한국 정부는 자국 선박 보호와 안전 통과를 위해 직접 협상에 나서야 했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란이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란은 모든 선박을 차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 국가와 특정 선박에 대해서는 제한적 통과를 허용하면서도, 동시에 전체 해역의 위험성과 긴장 상태는 유지하고 있다. 즉 오늘날의 해상 통제는 단순히 “닫느냐 열어두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핵심은 “누가 선택적으로 흐름을 허가할 수 있는가”에 가까워지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새로운 형태의 질서 경쟁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미국은 항모강습단과 ISR 자산을 통해 국제 해상질서를 유지하려 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란 역시 일정 수준의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다.
결국 지금의 호르무즈 해협은 완전히 자유로운 공간도, 완전히 봉쇄된 공간도 아니다. 그리고 이번 한국 유조선의 통과는 바로 그 변화된 현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III. AFIB와 TIB는 왜 동시에 작동하는가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미국과 이란이 서로 완전히 다른 전략을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일정한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통해 해상질서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제한적 위협과 불확실성을 통해 그 질서를 지속적으로 흔들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도 완전한 승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항모강습단과 ISR 자산, 전략폭격기와 해상초계 체계를 통해 언제든 질서를 실제로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단순히 함대가 존재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장에서 즉시 행동으로 전환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구조를 ‘능동적 현존함대(AFIB·Active Fleet in Being)’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전력 보유가 아니라, 특정 해역에서 질서를 실제로 집행할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는 힘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국의 핵심 목표는 단순한 승리가 아니다. 미국은 국제 에너지 흐름과 해상 교통로가 완전히 붕괴되지 않도록 유지하려 하고 있다. 즉 지금 미국이 수행하는 역할은 ‘점령’보다 ‘질서 유지’에 가깝다.
반면 이란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란은 미국과 정면 해전을 벌이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대신 드론과 기뢰, 고속정, 미사일, AIS 차단과 같은 비대칭 수단을 통해 해협 전체에 지속적인 불확실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란 역시 해협 전체를 완전히 봉쇄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란은 오히려 제한적 통제와 선택적 압박을 통해 “언제든 위험을 확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유지하려 한다.
필자는 이러한 구조를 ‘현존 위협(TIB·Threat in Being)’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실제 공격 여부와 관계없이, ‘존재하는 위협’ 자체가 시장과 국가들의 행동을 바꾸는 상태를 의미한다.
지금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바로 이 AFIB와 TIB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미국의 AFIB는 해협이 완전히 붕괴되지 않도록 유지한다. 반면 이란의 TIB는 해협이 완전히 안정되지 못하도록 만든다. 미국은 질서를 유지하지만 완전한 안정을 만들지 못하고, 이란은 질서를 흔들지만 완전한 봉쇄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쟁이 과거식 단기 결전 구조와 다르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경쟁은 상대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비용과 불확실성을 누적시키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실제로 국제 시장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한 해전 자체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해협 전체가 장기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다. 보험료 상승과 선박 지연, 운임 증가와 에너지 가격 변동성 확대만으로도 상당한 전략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의 경쟁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흐름을 둘러싼 장기적 비용전쟁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한국 유조선의 통과 역시 단순한 해운 사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AFIB와 TIB 사이에서 형성된 제한적이고 관리된 질서 속에서 가능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호르무즈 해협은 완전한 평화도, 완전한 전쟁도 아니다. 전쟁은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압박은 계속되고 있으며, 질서는 유지되고 있지만 흔들리고 있다. 필자는 바로 이러한 구조가 오늘날 호르무즈 해협이 보여주는 새로운 형태의 ‘정지된 전쟁(Paused War)’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IV. 현대 전쟁은 왜 비용전쟁으로 이동하는가
과거의 전쟁은 파괴 중심이었다. 도시와 군사시설을 점령하고 상대 전력을 격파하는 국가가 승리했다. 그러나 지금 호르무즈 해협에서 나타나는 경쟁은 이러한 전통적 전쟁 개념과 상당히 다르다.
현재 미국과 이란은 서로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있으며, 동시에 전면전 역시 피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압박이 멈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총성이 줄어든 이후부터 더 장기적이고 정교한 형태의 압박 구조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지금 호르무즈 해협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선박이 침몰했는가”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전체 흐름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가”에 있다.
실제로 국제 해운시장과 에너지 시장은 단순한 군사 충돌보다 지속적인 불확실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선박 한 척의 피해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험료 상승과 항로 지연, 위험 프리미엄 확대가 장기간 누적되는 것이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흐름의 핵심 초크포인트(chokepoint) 가운데 하나다. 하루 수천만 배럴 규모의 원유와 LNG가 이 해협을 통과하고 있으며, 한국·일본·중국과 같은 에너지 수입국들은 이 구조에 깊게 연결돼 있다.
즉 지금 호르무즈 해협에서 발생하는 긴장은 단순한 중동 지역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공급망과 산업 시스템 전체의 비용 구조를 흔드는 문제에 가깝다. 실제로 나무호 사건 이후 일부 선사들은 해협 통과 자체를 재검토하기 시작했고, 전쟁위험 보험료 역시 빠르게 상승했다. 일부 선박들은 AIS를 제한적으로 운영하거나 우회 항로를 검토하기 시작했고, 선박 운영 일정 자체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날의 경쟁은 ‘파괴 중심 전쟁’보다 ‘비용 중심 전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해상 통제와 제재, 역봉쇄를 통해 이란의 경제 흐름과 수출 구조를 장기적으로 압박하려 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해협 전체를 지속적으로 불안정한 공간으로 만들면서 국제 시장 전체에 비용 압박을 가하려 하고 있다.
즉 오늘날의 경쟁은 “누가 상대를 완전히 제거하는가”보다, “누가 상대에게 더 오랫동안 비용을 누적시키는가”의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구조는 현대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특성과도 깊게 연결된다. 현대 경제는 기본적으로 흐름의 체계다. 원유와 LNG, 반도체와 원자재, 물류와 금융은 끊임없이 이동해야만 시스템 전체가 유지된다.
따라서 특정 해협이나 공급망이 장기간 불안정해지면, 단순 군사 충돌 이상의 파급효과가 발생한다. 물류 비용 상승은 결국 에너지 가격과 산업 비용, 금융시장 불안으로 연결되며, 이는 각국 국내 정치와 사회 불안정성까지 자극하게 된다.
결국 오늘날의 해양 전략 경쟁은 단순한 군사력 경쟁이 아니라, “누가 글로벌 흐름의 비용 구조를 통제할 수 있는가”의 경쟁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중동 분쟁 지역이 아니라, 현대 국제질서의 구조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V. 한국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번 호르무즈 사태는 한국에게 매우 중요한 현실을 보여줬다. 그것은 한국 역시 더 이상 ‘안전한 외부자’로 남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한국의 안보전략은 한반도 중심 구조에 강하게 고정돼 있었다. 물론 북한 위협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생존 구조 자체는 이미 글로벌 해상 흐름과 깊게 연결돼 있다.
한국은 원유와 LNG, 핵심 원자재와 수출입 물류 대부분을 해상 교통로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중동 에너지 수송 구조는 한국 산업과 경제 전체의 기반과 직결돼 있다. 즉 오늘날 한국의 안보는 단순한 군사분계선 방어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유니버설 위너호 사건은 바로 그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한국은 자국 선박 보호와 에너지 수송을 위해 직접 외교 협상과 위기관리에 나서야 했고, 해협 통과 역시 더 이상 자동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경험하게 됐다. 특히 중요한 것은 지금의 국제질서가 단순한 군사동맹 구조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패권 경쟁은 에너지와 공급망, 해상 교통로와 금융 흐름 전체를 둘러싼 장기적 경쟁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역시 기존의 안보 개념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앞으로 한국형 해양전략(Korean Maritime Strategy)이 단순한 해군력 증강을 넘어, 흐름과 위험, 공급망과 비용 구조 전체를 함께 바라보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앞으로 한국은 세 가지 능력을 전략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흐름 감시 능력’이다. 앞으로는 단순 군사 위협뿐 아니라 에너지 이동과 초크포인트(chokepoint) 위험, 글로벌 공급망 변화와 해상 물류 흐름 전체를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는 전략적 감시체계가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둘째는 ‘흐름 유지 능력’이다. 현대 해양전략의 핵심은 단순한 전투 승리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위기 상황 속에서도 자국의 에너지와 물류 흐름을 실제로 유지할 수 있는가에 있다.
셋째는 ‘흐름 복원 능력’이다. 오늘날의 흐름전쟁에서는 완벽한 안전보다 충격 이후 얼마나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가가 훨씬 중요해지고 있다. 공급망 충격과 해상 위기에 대한 복원력 자체가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의 경쟁은 단순한 함대 규모 경쟁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안정적으로 흐름과 위험, 공급망과 비용 구조를 관리할 수 있는가에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한국 역시 더 이상 단순한 ‘질서 소비국’에 머물 수는 없다. 앞으로 한국은 자신만의 해양전략과 전략언어를 구축해야 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유니버설 위너호는 결국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진짜 의미는 한국 유조선 한 척이 무사히 지나갔다는 사실 자체에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통과가 더 이상 자동적인 자유항행의 결과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나무호 피격 사건 이후 한국 정부는 이란 측과 긴밀한 협의를 진행했고, 결국 한국 선박은 제한적으로 승인된 항로를 통해 해협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는 오늘날의 바다가 더 이상 완전히 자유로운 공간이 아니라, 허가와 관리 속에서 유지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호르무즈 해협은 완전히 닫혀 있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개방된 공간도 아니다. 선박은 이동하고 있지만, 그 흐름은 군사력과 외교, 위험관리와 정치적 협상 구조 속에서 제한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미국은 ‘능동적 현존함대(AFIB)’를 통해 질서를 유지하려 하고 있고, 이란은 ‘현존위협(TIB)’을 통해 그 질서를 지속적으로 흔들고 있다. 전쟁은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압박은 계속되고 있으며, 바다는 열려 있지만 동시에 불안정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구조 속에서 현대의 패권 경쟁은 점점 더 ‘흐름전쟁(flow warfare)’의 형태로 이동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가 더 이상 중동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앞으로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북극항로와 글로벌 공급망 경쟁에서도 유사한 구조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역시 이제 이 변화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앞으로의 해양전략은 단순한 함대 보유 경쟁이 아니라, 흐름과 위험, 질서와 비용 구조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이동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필자는 바로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 역시 자신만의 해양전략과 전략철학을 구축해야 하는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다는 아직 열려 있다. 그러나 이제 그 바다는 더 이상 완전히 자유로운 공간이 아니다.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국방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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