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를 배운 지 얼마 안 된 학생 하나가 선생님께 말한다. 워샹마이이판(我想買一飯). ‘나는 사고 싶다, 하나의 밥을’이라 번역할 수 있으니 훌륭한 문장이다. 그러나 중국인 선생님은 배꼽을 잡는다. 그나마 한국에서 오래 지내 알아들을 수 있어 다행이다. 영어로 한다면 ‘I will buy a rice’란 문장이다. 영어를 쓰는 토박이가 들으면 역시 뒤로 자빠질 말이지만 뜻은 통한다. 고마운 마음에 밥 한 끼 사겠다는 그 뜻.
정확한 중국어와 영어 표현은 해당 언어를 더 공부하면 알게 될 터이니 여기서 다룰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밥 한 끼 살게’라고 말할 때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어떻게 들릴 것인가이다. 일단 ‘끼’가 어렵다. 본래 ‘때’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끼니’나 ‘삼시 세끼’에 묻혀버린 말이다. ‘살게’라는 말끝이 언제인지는 몰라도 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내는 말이라는 것을 아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한국어를 잘 아는 외국인에게도 이 말은 어렵다. 한국인 친구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는데 이 친구가 ‘언제 밥 한 번 먹자’라고 말한다. 그럼 갈등해야 한다. ‘먹자’라고 했으니 같이 하자는 건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먹어야 하나? 식당에서 먹는다면 돈은 누가 내야 하나? 그나마 ‘언제 밥 한 끼 살게’라고 말하면 고민은 줄어드는데, 이 ‘언제’가 언제일지 알 수 없다.
여기서부터는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다. 고마운 사람에게 대접하겠다는 마음의 표현인데 이것이 얼마나 진심인지가 문제다. 진심일지라도 그것이 정확히 언제인지도 알 수 없다. 그날을 기다리다가 돌아가게 될지, 이 땅에 눌러살더라도 영원히 그날이 오지 않을지 모를 일이다. 사실 한국인끼리도 마찬가지다. 밥 한 끼 할 수 있는 ‘언제’는 말 속에만 있는 단어일지 모른다. 지킬 말만 해야 하고 말했으면 지켜야 한다. ‘나는 곧 반드시 밥을 한 차례 살 것이다’란 결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