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이렇게 사이좋게 지낼 줄 상상이나 했을까. 둘은 일본 나라현과 한국 안동, 서로의 고향을 4개월 간격으로 방문하며 한·일 셔틀 외교를 안착시켰다. 일본의 온천 도시에서 보자며 일찌감치 다음 만남도 기약했다.
한·일 정상의 화기애애한 왕래는 양국 사이 파인 역사적 고랑만큼 극적이다. 두 정상이 처음 만날 때 만해도 불안 섞인 눈초리가 가득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당선됐을 때 정부와 언론은 ‘극우보수’ 경향을 우려했다. 해마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고, 독도를 자국 영토로 확언했기에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이 대통령도 일본 입장에선 꺼려지는 상대였다. 그는 박근혜 정부 시절 한·일 위안부 합의를 비판했고 “과거사에 대해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며 일본에 대한 불신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권 당시 ‘죽창가’를 부르며 ‘노(No) 재팬’을 외친 전력이 있다. 상대방의 외모·스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장 제끼는 요즘 소개팅 풍조라면 둘은 만나기도 전 서로를 ‘패스’했을 것이다.
한·일 정상은 사실 억지로 주변에서 맺어준 ‘강제 커플’에 가깝다. 최대 주선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에서 둘의 곁을 누구보다 든든하게 지켜줘야 할 ‘힘 센 미국 친구’는 관세를 올린다는 둥, 국방비를 더 내놓으라는 둥 동맹의 신뢰보다 손익계산서를 만지작거렸다. 급기야 대만 문제를 중국과의 협상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을 시사하며, 여차하면 동아시아에서 손 털고 떠날 수 있다는 분위기까지 풍기니 ‘동병상련’인 한·일은 죽으나 사나 동고동락해야 하는 처지다.
강제로 커플이 됐다고 울상지을 일은 아니다. 본래 서로 다른 성질의 존재가 ‘화학적 결합’을 통해 의외의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법이다. 발레 ‘봄의 제전’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안무가 바슬라프 니진스키는 원수에 가까웠다. 작곡가는 악보에 무지한 안무가를 “음악적 문맹”이라며 무시했고, 안무가는 ‘안하무인’ 작곡가를 외면했다. 자본과 명예라는 수단을 쥐고 둘을 억지로 묶은 건 당대의 흥행사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였다. ‘봄의 제전’ 초연은 20세기 현대예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서로에 대한 분노, 외부 압박에 대한 긴장감으로 인해 ‘날 것의 에너지’를 온전히 뿜어낼 수 있었던 덕분이다.
한·일 ‘강제 커플’에게도 긍정적 파열음을 기대하는 이유다.
이정우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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