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석좌교수

 

신념에 반하는 정보 접했을 때

되레 기존 믿음 강화하는 심리

정치 이슈서 더 극명히 드러나

 

 

상대 설득하고 화합하기 위해

나도 틀릴 수 있단 유연함 필요

약한 자기확신, 현명한 대화법

선거철만 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오래전 정말 친한 그룹의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모임의 시작은 특정 분야의 심의를 진행하는 회의에서 비롯됐다. 시민단체 활동가, 공학 전문가, 그리고 대중 강의 활동가 등 다양한 직종의 대여섯 명이 한 달에 한두 번씩 정기적인 회의를 하는 임무였는데, 처음에는 모두 바쁜 일정에 쫓겨 회의가 끝나자마자 흩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임기가 끝나갈 무렵 마련된 식사 자리에서 예상외로 죽이 잘 맞았던 우리는 다음에도 만나자는 약속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 회의 아닌 친목으로 모임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바뀌게 됐다. 모임 인사들의 직업이 다양한 만큼 개인 인생사도 다양하고 세상 돌아가는 여러 관점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 학교생활만 해오던 나에게는 참 특별하고 즐거운 모임이었다.

그러다 언젠가 선거철에 그야말로 대형 사고가 터졌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가볍게 시작된 선거 이야기가, 어느 순간 극단으로 번지게 되면서 모임 멤버 중 두 분이 정면으로 붙게 된 것이다. 보수와 진보로 갈린 치열한 논쟁은 그 수위가 점점 올라가더니, 결국 입에 담을 수 없는 험한 말과 고성이 오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가볍게 양쪽 입장을 거들거나 실없는 농담이나 다른 주제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애쓰던 나머지 멤버들도, 점차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두 분의 언쟁에 그만 할 말을 잃게 됐다. 서로에 대한 폭언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하던 순간,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문을 박차고 나가면서 그 사건은 막을 내리게 됐다.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을 화해시킬 자신이 없었던 우리는 그 어색한 분위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모임을 갖지 않게 됐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두 분 중 한 분의 부고를 접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병으로 떠난 그 소식 앞에 나는 종일 멍한 상태였다. ‘아 진작에 두 분을 적극 화해시키고 더 좋은 시간을 만들 것을….’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그토록 주장하던 극단적 장면이, 그 즐거운 친목 모임을 함께한 사람 모두에게 남은 마지막 모습이 됐다는 사실에 자책감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논쟁을 하거나 다툼을 할 때 그 시작의 대부분은 아무것도 아닌 일인 경우가 많다. 가볍게 상대의 의견에 대해 다르다, 틀렸다는 지적을 하다가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깊은 극한 감정의 상태로 흐르게 된다. 다른 의견을 내거나 잘못을 지적하게 되면 상대의 관점에 대해 살펴보거나 스스로를 점검해 보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너는 얼마나 옳길래 하며 상대에 대한 공격과 비난을 퍼붓기 쉽다.

인간의 뇌는 자신의 평소 신념과 가치관을 보호하려는 강력한 본능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믿음이 공격받는 순간, 이를 신체적 위협과 비슷하게 인식한다. 실제로 이때의 뇌를 촬영해 보면 신체적 공격을 당할 때와 같은 고통의 뇌가 활성화된다. 이성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대뇌피질 대신, 감정과 생존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활성화되면서 전투 모드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전투에 돌입한 우리 뇌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도리어 상대방 주장 중 허술한 부분을 찾는 데 집중한다. 그렇게 허점을 찾게 되면 만족의 보상중추가 활성화돼 상대가 잘못했다고 확신하게 되면서 더욱 맹렬한 공격을 퍼붓는다. 이 공격으로 상대의 뇌 역시 고통을 느끼게 되고, 그 역시 이성적 판단 대신 상대 말의 허점을 찾는 데만 에너지를 쏟게 된다. 예컨대 부부싸움의 경우, 처음엔 별 게 아닌 사소한 일에서 시작하지만 다툼이 진행되면서 ‘그럼 넌 뭘 잘했길래? 그때 넌 나보다 더하지 않았냐’라는 식으로 서로 잘못을 찾아 들추며 맹공격을 퍼붓게 되고, 결국 “이혼하자 이혼해”라는 말을 쏟아내는 극한 상태로 치닫게 된다.

이는 자신의 믿음이나 신념과 상충하는 증거를 접했을 때 오히려 기존 믿음을 더 강하게 지키려는 심리적 현상, 바로 ‘백파이어 효과’(Backfire Effect)’ 때문이다. 백파이어 효과는 사소한 관계에서의 다툼뿐 아니라, 민감한 사회·경제·정치적 이슈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설사 확실한 팩트라 해도 그 팩트가 나의 믿음과 반대되는 것이라면, ‘내가 알던 사실이 틀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해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신념 강화를 위한 불쏘시개가 되는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는 말이다.

논리적이고 유연한 사고,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는 능력을 담당하는 뇌의 활성도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져 이미 감정적 전투 모드에 돌입한 뇌는, 아무리 명백하고 객관적인 데이터 앞에서도 이를 분석·수용할 이성적 에너지가 없다. 그러니 과학적 증거를 들이밀면서 하는 반박이 상대의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게 아니라, 상대 스스로의 옳다는 신념만 더 강화시킬 뿐이다.

개인화한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는 요즘 시대에는, 자신의 신념에 대해 한 톨의 의심도 없는 확증편향적 사고가 만연하다. 이처럼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게 굳어진 개인의 신념들이 부딪치게 되면, 아무리 확실한 팩트나 증거, 칼날처럼 예리한 논리적 반박을 하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장면이 연출되긴 어렵다.

상대를 설득하고 화합하기 위해서는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느슨한 태도로, 상대의 백파이어 효과가 활성화되지 않도록 공감해주는 태도가 우선이다. 또한,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유연함을 가진 대화가 무엇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니 강한 설득 대신 ‘약한 자기 확신’이 도리어 갈등을 완화시키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 시대의 가장 현명한 대화법은 아닐까.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석좌교수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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