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논설위원

 

‘돈맛’에 취한 듯한 세태 심각

탐욕이 극단 이기주의와 결합

삼전 성과급의 본질 성찰할 때

 

정부가 투자 광풍 바람잡이役

과열 신호 잇달아도 경계 실종

왜곡된 경제심리에 균형 절실

러시아에 이런 민담이 있다고 한다. 부잣집 옆에 가난한 농부가 살았다. 부자에겐 튼실한 암소 한 마리가 있었다. 농부로선 뼈 빠지게 일해도 갖지 못할 가축이었다. 농부가 하늘에 빌었더니 무엇을 원하느냐고 한다. 농부의 대답은 “암소 한 마리를 내려주세요”가 아니었다. 이랬다. “옆집 암소를 죽여주세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옆 사람과 짝을 짓고 1000달러씩 나눠준 뒤 서로에게 얼마나 줄지를 적어내게 했다. 둘이 서로의 액수에 동의하지 않으면 아무도 돈을 받지 못한다. 적은 액수라도 돈을 받게 합의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 대부분은 250달러보다 적으면 절대 받지 않겠다고 했다. 상대가 자기보다 많은 돈을 갖게 하느니 모두 못 받게 하겠다고 했다.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저서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서 전해준 이야기다. 정부가 소득 불균형을 해결하지 않으면 ‘계속 악몽에 시달려야 한다’고 경고한 진보 성향 학자다. 2009년 금융위기를 분석하면서 ‘경제 스트레스가 극단적 국가주의, 외국인 혐오 등으로 나타나 민주주의 자체가 희생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실제 도널드 트럼프의 등극으로 현실화)한 인사다. 그러면서, 대중의 탐욕이 낳을 극단의 이기적인 심리와 행위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은 것이다.

비단 책 속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첨예했던 시점에 총파업을 주도한 노조의 간부가 “회사를 없애버리는 게 맞다”고 했다. 정부와 회사에 화가 나서 해댄 말이었다고는 하나, 성과급 배분을 놓고 집안싸움까지 벌어진 상황이었다. 내 뜻대로 안 되면, 모두가 못 갖게 하겠다는 심리도 있었을 것이다. “돈 보고 이거 하는 거 아니다”고 한 게 더 가식적으로 들렸다. 최상위 임금을 받는 사람이다. “삼성전자의 성과급 파업 상황은 가진 자와 더 가진 자 사이의 충돌”(블룸버그)이었다.

그렇다고 그들 탓만 할 수는 없다. 비정규직·중소기업·청년층은 왜 생각하지 않느냐, 국가 경제 타격을 모르느냐, 윽박지르다가도 주변을 보면 맥이 빠진다. 그야말로 ‘돈맛’에 취한 사회이지 않은가. 코스피 지수가 1년 새 3배 수준으로 급등했고, 반도체 특수에 SK하이닉스는 꿈의 영업이익률 70%(지난 1분기)를 돌파했다. 저마다 ‘포모(Fear Of Missing Out)’에 사로잡혀 주식이건 부동산이건 자산 시장에 목을 맨다. 정부가 바람잡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주식 투자로 자산을 형성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입법과 정책을 밀어붙였다. 예금·보험을 깨고 주식에 ‘몰빵’했다는 얘기를 자랑처럼 늘어놓는 세태가 됐다. 연일 사상 최대 하락·상승이 반복되고, 금리 상승 경고등도 들어왔음에도 ‘닥치고 매수’는 멈추지 않는다. “지금처럼 도박심리에 빠져있던 시기는 없었다”(워런 버핏)는 우려가 딱 들어맞는 곳이 바로 여기다.

부동산 시장에선 연초부터 “부동산을 잡는 것은 주식시장 정상화보다 쉽다”더니,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재개로 비롯된 파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 아파트 값(한국부동산원)은 올 들어 이달 둘째 주까지 전년 동기 대비 2배 수준, 전세 가격은 같은 기간 6배 수준의 상승 폭을 나타냈다. 머리를 족족 때려도 다시 불쑥 올라오는 게임 상자 속 두더지처럼, 지금 아니면 못 산다며 달려드는 사람이 많은 거다. 30대가 많은 생애 첫 주택 매수자가 지난달에 4년 5개월 만에 최대치였다.

희한한 건, 돈을 좀 벌었다고 씀씀이 커졌다는 얘기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소비심리는 개선됐다고 하지만, 체감물가 상승이 가계의 실질구매력을 막고 있다. 주식 투자 인구가 1400만 명을 넘고 자산시장이 폭등하는데, 장삼이사들은 사는 게 팍팍하단 얘기뿐이다. 저성장 사회에선 생존 경쟁이 심해진다. 공존의 가치보다 뒤틀린 이기심에 더 솔깃해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간혹 언급하는 ‘대동 세상’이 이런 풍경인가. 투자 광풍에 휩쓸린 뒷골목을 살펴야 하고, 반도체에 가린 침체 산업을 일으켜 주며, 돈맛에 현혹되는 사회에 ‘사는 맛’도 보태 균형을 찾게 하는 게 정부의 일일 것이다. 루저의 넋두리쯤으로 여기지 말길 바란다.

오승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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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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