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민의 정치카페 - 스타벅스 논란

 

李, ‘고의 추정’으로 기업을 공적 응징… 대통령의 기업 때리기는 국가의 과잉 개입

‘분노 조직화’로 진영 결집 노린 듯… 권력이 ‘상처받은 기억’의 대리인 행세 안 돼

최근의 스타벅스 논란은 기업의 무감각한 상술에서 출발한 사안이 대통령의 도덕적 분노를 계기로 ‘공적 응징’ 차원으로 커진 사안이다. 기업이 빌미를 제공했지만, 이에 대한 권력의 집요한 때리기는 권력의 과잉, 국가의 과잉이다.

대통령이 다가오는 6·3지방선거를 겨냥해 상처받은 과거의 기억을 ‘분노의 연료’로 쓰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대통령의 메시지

“광주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희생자들의 피어린 투쟁을 모독하는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이벤트라니… 대한민국 공동체와 민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이런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에 분노합니다.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행정적, 법적, 정치적 책임이 주어져야 할 것입니다.”(이 대통령, 5월 18일 X)

“세월호 참사 추모일(4월 16일)에 싸이렌(사이렌) 이벤트 개시라니… 인두겁을 쓰고서는 도저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건을 연결시켜 보면 5·18 맞이 탱크데이 행사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조롱하고 모욕한 것이 우발적 사건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이 금수 같은 행태에 국민적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이 대통령, 5월 23일 X)

이 대통령의 글은 기업에 대한 ‘도덕적 처벌 명령’에 가깝다. 대통령과 시민운동가의 언어는 달라야 한다. 행정부와 사회 전체에 보내는 정치적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때맞춰 법무부가 대검에 스타벅스 상품 구입 내역을 보고하라고 지시했고, 행정안전부 장관은 정부기관 이벤트 상품에서 스타벅스 상품을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민주주의의 기억에 상처를 준 기업을 비판하는 것과 국가권력이 그 기업을 심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사이렌은 스타벅스 브랜드의 로고이자 핵심 상징이다. 2024년 4월 16일 ‘사이렌 머그컵’ 출시가 있었다. 대통령이 이를 마치 ‘장미의 이름’ 속의 코드를 감춘 암호로 해석해 5·18 이벤트와 연결한 것은 과도한 ‘고의 추정’이다.

역사적 비극에 대한 기억은 국민의 도덕적 의무다. 하지만 국가권력이 ‘민주주의의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에 압박을 행사하는 것은, 그 기억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진정한 가치인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고의 추정

소니는 2021년 7월 7일 신제품을 발표한다고 예고했다가 곤경을 치렀다. 중국 당국과 네티즌들이 일제 침략기인 1937년 7월 7일 발생한 ‘노구교사건’과 날짜가 겹친다며 ‘중국에 대한 공격’이라고 반발했기 때문이다. 소니는 행사를 취소하고 사과했다. 이 역시 역사적 비극의 기억이 ‘고의 추정’과 결합해 기업 응징으로 번지는 메커니즘이 작동한 케이스다.

스타벅스 사건과 소니 사건은 몇 가지 닮은 점이 있다. 첫째, 날짜와 상징의 우연성을 악의의 증거로 해석했다. ‘5월 18일 탱크’와 ‘4월 16일 사이렌’, ‘7월 7일 소니 신제품 발표’는 모두 ‘암호화된 조롱’으로 읽혔다. 중국의 ‘애국주의 분노’가 노구교사건의 날짜에서 모욕의 암호를 읽어냈다면, 한국의 권력은 5·18의 날짜와 ‘탱크’라는 단어에서 반민주주의의 고의를 해석해냈다.

둘째, 권력의 개입이 시민 분노의 연료가 됐다. 중국에서는 권력의 플랫폼 및 행정 제재가 애국주의 네티즌의 분노를 불태웠고, 한국에서는 대통령의 격한 메시지가 여권의 대대적인 공세와 시민운동권의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셋째, 문제의 초점이 기업의 부적절한 마케팅에서 정치성향 검증으로 이동했다. ‘상처받은 역사를 기억했는가’라는 질문은 어느 순간 ‘공동체의 적인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가’ ‘국가폭력 희생자를 조롱했는가’라는 정치재판으로 확장됐다.

스타벅스가 잘못했다. 하지만 사과했고 최고경영자인 스타벅스코리아 대표가 해임됐으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후의 발전 과정은 ‘스타벅스가 잘했느냐’의 문제를 넘어섰다. 국가권력이 ‘상처받은 기억’의 대리인으로 나서는 순간 민주주의는 위험해진다. 자칫 국가폭력의 피해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새로운 국가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다.

◇분노의 조직화

이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민감성을 발휘하는 배경엔 다가오는 선거를 의식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전국 단위의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보수 결집에 대항하는 진보 결집을 꾀하고, 공소취소 특검 추진 논란 같은 불리한 의제를 덮기 위해 스타벅스를 제물로 삼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분노는 가장 빠른 국민 동원 수단이고, 도덕은 가장 강력한 낙인 도구다. 특히 진보 진영은 늘 ‘분노의 오브제’를 찾았다. 미국 소고기 수입 파동(2008년) 때는 미친 소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2011년) 때는 핵 폐수가 등장했다. 사드(THAAD) 배치(2016년) 때는 전자파 괴담이 동원됐다. 사실보다 공포가 앞서고 검증보다 낙인이 빨랐던 순간들이다. 이번엔 스타벅스가 그 자리에 섰다.

전국 단위의 중대 선거를 앞두고 분노를 조직하는 것은 표를 모으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국가는 역사적 상처를 기억해야 하지만, 역사적 상처를 내세워 기업·기관·개인을 도덕적으로 색출하는 것은 위험하다.

대통령의 분노가 선거일까지만 유효한 것이라면 더 큰 문제다. 보수 정치권 내에서는 “스타벅스 불매운동 기한은 딱 6월 3일까지일 것”이란 관측이 터져 나왔다. 장동혁 국민의힘 지도부뿐 아니라 오세훈, 안철수, 한동훈, 이준석 등 중도 성향의 보수 인사들도 한목소리로 권력의 과잉을 지적하고 나섰다.

보수 진영에서 나오는 “스타벅스를 손에 들고 투표장 가자”는 구호는 거칠지만 직관적이다. 대통령의 스타벅스 공격을 권력의 과잉으로 치환하는 순간이며, 커피 한 잔이 자유주의적 투표의 상징이 되는 순간이다. 대통령이 특정 기업을 낙인찍는다고 느낀 시민들에게 커피 한 잔은 항의의 기호가 될 수도 있다. 권력이 소비의 영역까지 도덕적으로 심판하려 들면 시장은 때로 투표장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법이다.

◇권력의 기억 독점

역사적 기억은 공동체 전체의 양심에 속한다. 권력이 그 기억을 독점해 기업을 응징하고 시민의 소비를 심판하기 시작하면, 양심은 통치술이 되고 추모는 검열이 된다. 기업의 실수 이상으로 걱정되는 것은 실수를 빌미로 움직인 권력의 가벼움이다. 스타벅스 때리기가 선거철 또 하나의 ‘죽창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전임기자, 행정학 박사

■ 용어설명

‘노구교사건’은 1937년 7월 7일 중국 베이징 인근 노구교에서 벌어진 일본군과 중국군의 충돌 사건으로 중일전쟁의 발단이 됨. 중국에서는 이 사건을 7·7사변이라고 부름.

‘사이렌’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마력을 가진 님프. 스타벅스는 이 유혹의 속성으로 고객을 끌어들이겠다는 의미를 담아 사이렌을 기업 심벌로 삼음.

■ 세줄 요약

대통령의 메시지: 스타벅스 논란은 기업의 무감각한 상술을 대통령이 공적으로 응징함으로써 커진 사안. 기업이 빌미를 제공했지만, 이에 대한 권력의 ‘도덕적 처벌 명령’은 권력의 과잉, 국가의 과잉임.

고의 추정: 국가권력이 5·18 등 ‘상처받은 기억’의 대리인으로 나서는 순간 민주주의는 위험해져. 국가폭력의 피해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칫 새로운 국가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아.

분노의 조직화: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나서는 배경엔 6·3지방선거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 나와. 분노를 조직화함으로써 공소취소 논란 등으로 불거진 불리한 의제를 덮고 진보 결집을 꾀하려 한다는 것.

허민 전임기자
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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