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반도체 특수로 한국 기업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영업이익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반도체 기업의 초호황은 한국 사회에 국민 배당금 지급, 노동조합 이익 배분 등 다양한 이슈를 양산하고 있다.(필자 주)
최근 삼성전자 노사가 ‘잠정합의’라는 것을 통해 ‘사업성과’(영업이익에서 약간 변화를 준 것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의 10.5%를 재원으로 특별경영성과급(지급률 상한 없음)를 지급하기로 함으로써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한 뒤부터 우리나라가 유지해온 ‘경제성장 모델’에 타격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식 경제성장모델?
한국식 또는 동아시아식 경제성장모델은 강력한 국가주의의 전통 아래 ‘유교(儒敎)’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교육에 집중하면서 강력한 자원의 선택과 분배를 통해 추진돼 왔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국제통화기금(IMF) 설립 등 ‘브레튼우즈 체제’가 구축된 후 후진국(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또는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한 나라(일부 섬나라 등 제외)는 사실상 한국이 유일하다.
더욱이 한국은 1997~1998년 외환위기 시절 IMF 자금을 빌리면서 소위 ‘IMF 프로그램’을 이식받기도 했다. 2차 대전 이후 IMF 프로그램을 이식받은 후 한국만큼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한 사례는 없다. 지금까지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국가가 IMF 프로그램을 이식받았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IMF 프로그램이 널리 이식됐지만,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라는 찾기가 쉽지 않다.
한국은 자원이나 영토, 인구 등 전통적인 국가의 요소에서 강점이 별로 많지 않은 나라다. 이에 따라 국가가 개발 대상 산업(업종)을 선정하고, 제한된 자원을 특정 산업에 집중적으로 쏟아붓는 형태로 경제발전을 추구해왔고, 오늘날까지 성과를 거둬왔다.
이런 방식은 메이지 유신 직후 일본이 취한 방식과 유사하고, 오늘날 중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 많은 국가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요즘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이 ‘KSP(지식공유사업·Knowledge Sharing Program)’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식 경제성장모델을 개발도상국에 전파도 한다.
■한국식 경제성장모델에서 삼성전자
오늘날 삼성전자, 특히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성공은 대부분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을 포함한 삼성 내부의 역량이 만든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오늘날 ‘삼성전자의 성공’을 이끈 가장 큰 동력은 삼성 내부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얘기다. 다만, 반드시 삼성전자나 삼성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정부(또는 국가)가 삼성전자가 사업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 부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식(또는 동아시아식) 경제성장모델의 핵심은 뛰어난 기업의 활동을 국가가 총력체제를 구축해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세액공제 및 감면 규모
그래픽: Claude.ai
문화일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출처로 보도(2026년 5월 19일 자 3면, 신병남 기자)한 바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16∼2025년) 삼성전자 법인세 세액공제·감면 규모는 42조8125억 원이다. 2021년 이후 최근 5년간 받은 세액공제·감면 규모가 전체의 73.4%(31조4608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최근 5년간 31조 원이 넘는 세액공제·감면은 현재 삼성전자 매출이나 영업이익을 고려하면 크지 않지만, 과거 삼성전자의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오늘날처럼 크지 않을 때는 매출이나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현재보다 훨씬 컸다.
정부가 삼성전자에 대해 지원하는 것이 세액공제 및 감면만은 아닐 것이다. 공장을 새로 설립한다고 하면, 용지 규제에서부터 수도, 전기 공급 등의 분야에서 ‘종합적인 패키지(묶음) 지원’을 하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다.
기업 입장에서는 부족하다고 느끼고, 실제로 부족하다고 주장하지만, 정부가 제공하는 세금 혜택과 용지 등 각종 규제에 대한 예외 인정, 수도·전기 등 각종 지원의 경제적 효과를 모두 합친다면 적다고만 얘기하기는 힘든 규모의 정부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 지원의 논리, ‘분수효과’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국가가 기업, 특히 대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초고속 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동 부문이 상대적으로 소외되거나,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등이 혜택을 상대적으로 덜 받아온 측면이 있다는 점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국가)나 기업은 “기업이 발전하면, 다소간의 시차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국민 모두 혜택을 받게 된다”는 논리를 내세워왔다. 소위 ‘분수효과’다.
물론 정부와 기업이 분수효과를 내세울 때마다 노동과 진보 진영은 “분수효과는 허상(虛像)일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분수효과의 실체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한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다만, 만약 삼성전자를 포함한 대기업의 발전이 우리나라 국민 전체의 후생을 증대시킨다는 분수효과가 존재한다면, 분수효과의 가장 중요한 증거 중 하나는 기업이 내는 세금일 것이다. 삼성전자의 매출이 늘고 이익이 늘어나면, 세금(법인세 등)을 많이 내게 되고, 정부는 그 세금을 이용해 저소득층 지원을 포함한 각종 복지사업 등에 돈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번 삼성전자 노사의 협상 과정에서 노조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면서 지금까지 ‘한국식 성장모델’의 미덕(美德)으로 여겨져 온 많은 부분이 사산(死産)되기 시작했다.
세금도 떼기 전의 이익인 ‘영업이익’의 특정 비율을 노조가 가져간다는 것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어린 시절 ‘소년공’ 경험까지 갖고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進步)로 분류되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나섰다.
“그런데 지금 일부 노동조합이 단결권, 단체행동권을 통해 단체교섭을 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좋은데, 그것도 적정한 선이 있지 않는가 싶다. 영업이익에 대해서 이익(영업이익, 인용자)을 배분받는 것은 투자자가 하는 것이다. 주주가 하는 거죠. 정부조차도 특정 기업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를 합니다. 세금을 깎아주기도 하고 시설 지원을 해주기도 하고, 여러 가지 제도적 정비를 통해서 또는 외교적 노력을 통해서 지원하죠. 그런데 국민 공동의 몫이라고 할 수 있는 세금도 떼기 전에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제도적으로 나눠 갖는다. 그것은 투자자도 할 수 없는 일이죠. 투자자도 세금을 떼고 당기순이익에서 배당을 받지 않습니까. 어쨌든 저로서는 약간 이해가 되지 않아요.”(이재명 대통령, 2026년 5월 20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대책회의 모두발언, MBC NEWS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9xnin_LykKM에서 인용, 2026년 5월 21일)
물론 삼성전자 노조가 영업이익의 특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가져간다고 해도, 해당 소득에 대해 소득세는 국가에 내야 하므로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 것이 아니다.
현재 논란이 되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도 지적한 것처럼, ‘삼성전자의 매출과 영업이익’의 일정 부분에는 ‘정부의 기여분’(세금을 깎아주기도 하고 시설 지원을 해주기도 하고, 외교적 노력을 통해서 지원)도 있는데 왜 세금도 떼기 전에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노조가) 제도적으로 나눠갖겠다는 것인가, 라는 문제다.
만약 노조든, 경영진이든, 주주든 세금도 떼기 전에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제도적으로 나눠 가진다면, 논리적으로 ‘이런 종류의 기업에 대해 정부가 계속해서 세금공제 및 감면을 포함한 다양한 지원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만약 노조든 경영진이든, 주주든 세금도 떼기 전 영업이익에서 ‘제도적으로’ 일정 비율을 가져가도록 규정된 기업이 있다면, 이 기업에 대해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지원해야 하는 명분과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현실적으로 궁색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삼성그룹의 다른 초우량 계열사, 현대차그룹 등의 초우량 계열사 등 우리나라의 많은 대기업에서 ‘우리도 영업이익의 N%를 성과급으로 달라’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면, 그동안 비교적 성공적으로 작동해온 ‘한국식 경제성장 모델’이 앞으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세금도 내지 않은 상태의 영업이익에서 일정 비율을 노조가 성과급으로 가져가는 기업에 대해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계속 지원을 한다는 사실에 대해 동의하기가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삼성전자 노사의 잠정합의는 표면에 드러난 각종 이슈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화두(話頭)를 한국 경제에 던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