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이의 올댓클래식 - 작곡가·화가 추를리오니스

 

알레그로·안단테·스케르초 등

회화 제목도 음악 악장서 따와

 

현대엔 음악·영상 결합 많지만

100여년전 개척해낸 경이로움

5월 말 일본 도쿄(東京) 우에노 공원은 이미 신록이 짙다. 벚꽃이 지고 난 자리를 초록이 가득 채운 길을 따라 걸으면, 회색 콘크리트 건물인 국립서양미술관이 나타난다. 평일인데도 입구에 긴 행렬이 이어져 있다. 미칼로유스 콘스탄티나스 추를리오니스(M. K. Ciurlionis·1875∼1911·사진) 특별전에 인파가 몰려든 것이다.

추를리오니스라니. 상당히 낯선 이름이다. 리투아니아 작곡가이자 화가였던 그는 서른다섯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음악 작품 200여 곡과 그림 300여 점을 남겼다. 그는 바르샤바와 라이프치히에서 정규 작곡 교육을 받았으며, 음악 구조 자체를 시각 언어로 전환하려 했다. 이번 도쿄 전시는 그가 단지 ‘그림도 그린 음악가’ 혹은 ‘작곡도 한 화가’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소리와 색채, 악보와 캔버스를 종횡무진 오가며 두 경계를 허문 전방위 창작자였다.

‘별의 소나타’ 중 안단테. 걸어가듯 느린 빠르기로 연주되는 안단테 악장을 형상화했다.
위키미디어
‘별의 소나타’ 중 안단테. 걸어가듯 느린 빠르기로 연주되는 안단테 악장을 형상화했다. 위키미디어

전시의 부제는 ‘내면의 별자리(The Inner Constellation)’. 2026년 3월부터 6월 14일까지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열리는 회고전으로, 일본에서 그의 대규모 기획전이 열린 것은 1992년 이래 34년 만이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인들에게 추를리오니스가 마냥 생소한 이름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인지 관람 풍경도 예사롭지 않다. 많은 이들이 카메라를 가져와 작품마다 사진을 찍었고, 캔버스 앞 행렬은 지나치게 느리다 싶을 정도로 유심히 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전시와 음악을 적절히 아우른 점도 인상적이었다. 전시장에는 관현악이 낮게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추를리오니스가 작곡한 교향시 ‘바다’였다. 자필 악보가 전시되어 있고, 그가 그린 ‘바다의 소나타’ 연작이 나란히 걸려 있다. 같은 해, 같은 주제로 창작된 음악과 그림을 한 공간에서 동시에 선보인 셈이다.

회화 제목부터 특이하다. 소나타 시리즈는 알레그로, 안단테, 스케르초, 피날레 같은 음악 악장으로 구성된다. 알레그로는 동적이고 특유의 활력이 느껴지며, 안단테는 정적이고 고요하다. 음악에서 빠르기가 곡 고유의 성격을 만들듯, 그의 그림에서는 선율과 리듬이 색조와 모티프를 이룬다. 템포가 빨라지면 회화 속 밀도도 높아지고, 주제가 반복되는 자리에는 같은 형상이 변주되며 나타난다.

그래서 그의 작품 앞에서는 독특한 감각이 생긴다. 화폭 속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파도 소리나 선율처럼 느껴지고, 별빛은 화음처럼 중첩된다. 산과 탑은 상승하는 음계처럼 솟아오르고, 그림과 음악이 한데 어우러지며 장르 구분은 모호해진다. 소나타 3악장 구조가 세 개 패널로 구성된 삼면화(三面畵·triptych)가 되고, 전주곡과 푸가는 이면화(二面畵·diptych)가 되는 식이다.

20세기가 막 열리던 시절에 이런 시도가 가능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오늘날 클래식 공연장에서는 음악과 영상을 결합한 멀티미디어 콘서트가, 미술관에서는 몰입형 전시가 대세다.

시각과 청각을 하나의 경험으로 엮으려는 시도는 최근 활발하지만, 그는 이미 1900년대 초 그 길을 걸었다. 그가 쓴 도구는 스크린도 스피커도 아닌, 물감과 오선지였다.

파울 클레나 칸딘스키 같은 화가들 역시 음악을 회화로 표현했지만, 추를리오니스처럼 양쪽을 완벽하게 오간 사례는 드물다. 동시대 작곡가 스크랴빈도 색과 소리의 대응을 꿈꾸었지만, 어디까지나 음악 위주의 시도였다. 그의 곡은 정녕 듣는 회화였고, 그림은 보는 악보였다.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의 그림 앞에서 무언가 들리는 경험을 할 것이다. 눈은 선과 색을 좇고 있는데, 머릿속에서는 음률이 흐른다. 서로 다른 예술이 하나의 언어로 일치되는 자리, 그것이 추를리오니스의 세계다. ‘내면의 별자리’라는 전시명은 그래서 적확하게 느껴진다. 각각의 감각들이 별처럼 흩어져 있다가, 하나의 성좌로 이어지는 체험. 추를리오니스는 그 별자리를 붓으로 그리고, 음악으로 들려준 예술가였다.

음악 칼럼니스트‘음악과 이미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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