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스스로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결국 죽는다. 변화의 시대정신에 적응하지 못하고 낡은 껍데기에 갇힌 한국 정당 정치의 자화상이다.
사전투표가 바로 내일 시작된다. 그런데도 정당들은 과거의 진흙탕에서 도덕성 공방과 진영 싸움만 거듭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시들어 가는 위기 속에서 유권자는 사전투표용지 앞에 선다. 사전투표는 단순히 일찍 끝내는 투표가 아니다. 먼저 무겁게 책임지는 투표다. 지난 지방선거 사전투표율은 21%로 역대 최고치였다. 편의성은 비약적으로 커졌지만, 숙고를 대체하는 건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진영 논리에 휩쓸려 고민 없이 표를 던지는 순간 주권자가 아닌 동원된 숫자로 전락한다. 본투표까지 남은 엿새 동안 후보 단일화나 돌발 변수로 사표(死票)가 될 가능성도 엄존한다.
지방선거는 중앙 정치의 대리전이 아니다. 우리 삶터의 미래를 설계하는 독립된 장이어야 한다. 지역 소멸, 청년 유출, 골목 상권 붕괴, 돌봄 시스템 마비 등 주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를 해결할 ‘상호작용의 설계자’를 뽑는 기회다. 중앙 권력의 눈치만 보며 지역을 사유화하는 대리인들을 걸러내야 한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투표율이 낮을 때만 오는 게 아니다. 경쟁이 사라지는 곳에서도 민주주의는 조용히 말라죽는다. 무투표 당선자가 최소 504명이다. 12%로 역대 두 번째 규모다. 투표하기도 전에 당선되는 무투표 당선은 견제와 균형의 권력 분립을 붕괴시킨다. 일당 독점 또는 양당 카르텔의 결과다. 광역의회 의석의 90% 이상을 특정 정당이 독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양당의 적대적 공생 카르텔은 더욱 강고해진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필경 부패와 나태로 이어진다.
기형적 독점의 뿌리에는 중앙당과 국회의원에게 예속된 밀실 공천과 수직 계열화가 있다. ‘정당 공천만 받으면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된다’는 해묵은 냉소는 부끄러운 현실이다. 더불어민주당 서울 구청장 후보 25명 중 6명(24%)이 그 지역 국회의원의 보좌관이다. 지방의원 후보 중 무려 42%가 의원실 보좌진 출신이다. 정당이 공적 기구 아닌 사적 영지로 전락했다. 유권자들은 번호판만 보고 한 정당에 일렬로 투표하는 ‘묻지 마 투표’를 멈춰야 한다. 지방선거의 한 표는 단체장에게 추진력을 주되 지방의회에는 매서운 감시의 눈을 두는 정교한 권력 분할의 균형감이어야 한다.
투명 인간 취급을 받는 교육감 선거 역시 가볍게 넘길 수 없다. 교육감 선거는 아이들이 고향에 정착해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떠날 준비만 잘 시켜 보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가장 미래 지향적인 선택이다. 정당 라벨이 없는 교육감 선거야말로 인물과 정책의 본질을 정밀하게 검증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사전투표는 단순히 정당 하나를 고르는 선택지가 아니다. 단체장에게 위임할 권한과 지방의회에 맡길 견제와 교육감에게 맡길 아이들의 미래, 나아가 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소멸의 시간표를 정밀하게 직조하는 행위다. 사전투표는 진영의 강박적 호출에 수동적으로 응답하는 시간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말 한 표가 아니다. 권력의 카르텔을 깨고 지역의 미래 지도를 그리는 성숙한 시민의 송곳 같은 첫걸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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