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때 작은할아버지의 돼지 농장에 간 기억이 있다. 뽀얗고 보송한 아기 돼지에 반해 서울 집에 데려가자고 졸랐다. 부모님은 “내년에 학교에 입학하면 그때 키우자”며 나를 달랬다. 모면을 위한 거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속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막상 돼지를 아파트에 들이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우리 아파트에 염소가 이사 왔다!’의 ‘해솔’은 어떤 사정으로 염소 ‘흰바람’을 맡게 된다. 해솔은 과거에 아파트에서 병아리 ‘끼오’를 닭이 될 때까지 키웠다. 시끄럽다는 민원으로 끼오를 타지로 보내고 죽음을 막지 못했다. 같은 경험을 하고 싶지 않은 해솔은 흰바람과 함께 지낼 방법을 찾는다.
도시에서 동물과 공존하는 건 쉽지 않다. 그들에게 맞는 환경을 만들고 사람이 세운 규칙과 질서를 가르쳐야 한다. 누군가는 안전과 위생을 맡아야 한다. 까딱하면 변수로 인한 사건 사고에 호되게 책임을 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해솔이는 관심과 무관심, 호의와 적의 사이에서 어린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결코 흰바람을 포기하지 않는다.
해솔의 설득에 어른들은 아파트 단지에 염소가 있음으로써의 득실을 꼼꼼히 살핀다.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자 옳다고 생각되는 걸 택한다. 인간이 가진 걸 조금 내어주는 거다. 덕분에 이웃들끼리 안부를 묻고 안위를 위할 기회가 늘었다. 네발 동물, 새와 곤충, 꽃과 나무…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 심지어 사람끼리도 다르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배척하는 것이 쉬운 요즘, 꽁꽁 언 마음을 녹여줄 봄바람 같은 이야기 한 편이다. 112쪽,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