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한양대 국문과 명예교수

 

병원·지하철서 스친 알던 사람

굳이 아는 체해봐야 서로 머쓱

 

의식하지 못한 눈길이 날 봐도

추하지 않은 모습이면 좋겠다

 

덮어놓고 정 주면 상처가 남아

약간의 거리 있는 사이가 좋아

진료차 대학병원에 갔다. 아는 사람 셋과 마주쳤다. 한 사람은 내가 학장으로 있을 때 행정적 도움을 받았던 은퇴한 교직원이었다. 진료차 온 듯 그가 조금 떨어진 맞은편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고 있었다. 또 한 사람은 전공 분야가 다른 제자였다. 그가 자신의 노모를 부축해 내 앞을 지나갔다. 세 번째는 오랫동안 내 차의 정비를 맡았던 정비소 사장이었다. 진료실 앞 대기석 저편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왠지 익어 돌아보고 그인 줄을 알았다.

세 사람 모두 내가 외면했다. 한 사람은 길이 이미 엇갈린 뒤에 그를 알아보았다. 제자의 그늘진 표정에는 삶의 신산(辛酸)이 짙게 묻어났다. 아는 체해 봐야 서로 머쓱할 것 같았다. 다른 한 사람은 옆 사람과 나누는 말씨가 다소 거칠었다. 그가 나를 알아볼까 봐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세 사람 모두 나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시선이 마주쳤다면 도리 없이 인사를 나눴겠지만 그러지 않아 다행이었다. 언제 한번 보자는 뻔한 인사는 너무 진부했다.

몇 해 전 양평 쪽을 지나는 길에 어느 문학박물관에 잠깐 들렀다. 전시된 사진 속 사람이 대개는 알 만한 분이었다. 함께 갔던 아내와 그분들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았다. 조금 떨어져 있던 관장이라는 이가 다가와 나더러 누구시냐고 자꾸 묻는다. 아내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무 말 말라는 신호다. 서예 작품이 많이 걸린 춘천 쪽 어느 카페에는 내가 쓴 책이 꽂혀 있었다. 내색 않고 주인과 잠깐 글씨 얘기를 나누고는 그의 궁금증을 뒤로한 채 그저 나왔다.

며칠 전 지하철역을 지나는데 학술상 심사를 같이했던 원로 학자가 부인과 함께 지나갔다. 인사를 하려다가 두 분의 표정이 조금 무겁길래 옆으로 한 발 비켜 지나갔다. 연구실로 오는 길에 큰 정형외과 병원이 있다. 노인 부부가 그 앞에 서 있었다. 그가 30년 전 학회지를 출간해 주던 큰 출판사의 전무이사를 지낸 분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당시 조판으로 매년 700쪽이 넘는 책을 교정해야 해서 깐깐한 성품의 그에 대한 뚜렷한 기억들이 순간적으로 되살아났다. 반가웠지만 허리가 아파 힘겨워하는 그가 민망해할까 봐 아는 체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며 가지 치는 인연이 번거롭다는 생각을 한다. 복잡한 일에 엮이기 싫고, 공연한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 약속 자리에 예정에 없던 사람이 불쑥 끼어드는 것도 피곤하다. 가끔 술자리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 동석한 다른 사람을 바꿔주며 “이 친구가 당신을 좋아한다네” 하는 경우는 정말이지 딱 질색이다.

사람 까칠하단 말은 듣고 싶지 않지만, 삶이 좀 더 단출해졌으면 싶다. 좋아야 좋은 거지, 좋은 게 좋지는 않다. 속없이 허허 웃는 것도 마뜩지 않다. 내키지 않는데 그러려니 하며, 모욕을 당해도 할 수 없지 하다 보면 내 값이 마구 떨어질 것만 같다. 싫으면 싫은 내색을 해야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사람 좋은 것과 만만해 보이는 것은 비슷해도 전혀 다르다.

그러다 생각해 보니 내가 그랬던 것처럼 병원이나 지하철 찻간 같은 데서 나를 알아보고도 그저 지나친 눈길도 적지 않았으리라. 멀리서 나를 보고, 또는 바로 곁을 스쳐 지나치면서 ‘저 사람도 별수 없이 많이 늙었군!’ ‘모자는 왜 쓴 거야? 늙은이처럼.’ ‘그때 그렇게 매섭게 굴더니!’ 이런 속말들을 하면서 그저 지나쳤을 수도 있겠다 싶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옷매무새에 한 번 더 마음이 가고, 걸을 때 자세도 신경이 쓰인다. 차를 타고 학교를 다닐 때는 천으로 된 에코백만 줄창 들고 다녔다. 체모 없어 보인단 말에도 편하기만 하면 됐지 했다. 그러다가 새삼스레 장롱을 뒤져 스무 해가량 처박아둔 가죽 가방을 꺼내서 들고 다닌다. 어깨가 축 처져 보이지 않게 자세도 한 번씩 고쳐 잡는다. 의식하지 못한 눈길이 나를 스윽 훑고 그저 지나가더라도 그다지 추하지 않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무심한 표정과 입성에도 그간 내가 살아온 성적표가 다 들어 있는 것만 같다.

오래 데면데면 지내다가 갑자기 좋아지는 사람도 있다. 분야가 달라도 취미가 맞고, 성향과 기호가 비슷하며, 무엇보다 상대를 피곤하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런 벗을 두엇 가까이에 두고 남은 삶을 동무 삼아 건너가고 싶다. 깜빡이 없이 끼어드는 사람 말고, 거리를 지키고 자리를 가리는 사람이 좋다. 어린 왕자와 여우처럼 저쯤에서 눈길도 따로 두면서 조금씩 오래 시간을 들여 차츰 가까워지는 그런 만남이 좋다. 간섭하지 않고, 끼어들지 말고, 가르치려 들지 않아야 한다. 치대면 싫고, 나대도 싫고, 우기면 더 싫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가수 나미의 노랫말처럼 ‘너무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우리 두 사람’이 딱 좋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이’가 필요하다. 불리불친(不離不襯), 찰싹 달라붙지도 않고, 그렇다고 뚝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 그 중간이 필요하다.

덮어놓고 정을 주면 남는 상처가 싫다. 외롭다고 밖에 나가 분별없이 섞이면 사람이 가벼워진다. 그렇다고 곁을 주지 않는 까칠함도 좋지 않다. 소월은 ‘산에서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라고 했고, 윤선도는 ‘강촌의 온갖 꽃이 먼빛에 더욱 좋다’고 썼다. ‘저만치’와 ‘먼빛’은 얼마만큼 떨어진 거리인가? 그래서 ‘더욱 좋은’ 거리는 또 얼마쯤 되나?

정민 한양대 국문과 명예교수
정민 한양대 국문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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