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연구원, 前 미8군 장차작전처 WMD 계획장교

정부의 ‘핵추진 잠수함 개발 기본계획’, 즉 ‘장보고 N사업’이 공식화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한반도 안보를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상징이라며 10년 내 한국형 원자력 추진 잠수함 1호를 진수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위협에 대응하고, 장기간 수중작전이 가능한 전략자산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원잠의 필요성을 부정하긴 어렵다. 자주국방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안보정책은 상징과 구호만으로 추진될 수 없다. 국가 생존과 직결된 전략사업일수록 냉정한 재정 계산과 국제정치적 현실 위에서 검토돼야 한다. ‘원잠 1호 10년 내 진수’ 계획은 재정과 외교, 전략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막대한 재정 부담이다. 한국국방연구원에 따르면, 원잠 3척을 건조·운용하는 데 약 28조9000억 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초기 원자로 연구·개발(R&D)과 인프라 구축 비용을 고려하면 향후 10년간 매년 최소 2조 원 이상이 투입돼야 한다. 그런데 이 사업이 다른 핵심 안보 과제와 동시에 추진된다는 문제가 있다. 정부는 전시 작전통제권 조기 전환을 병행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적 작전 수행을 위한 정찰·감시 자산과 지휘통제 체계 구축에는 추가로 수십조 원이 필요하다. 현재 국방예산에서 고정성 운영비는 70% 수준이어서, 실제 신규 전력 확보에 사용할 방위력개선비는 제한적이다.

결국, 원잠사업과 전작권 전환 비용이 동시에 늘어나면 다른 군 전력(戰力)사업의 축소나 지연은 불가피하다. 게다가 대규모 미국산 군사 장비 도입, 차세대 전투기 양산, 미사일 방어(MD) 체계 구축 등 수조 원 규모의 사업도 대기 중이다. 무리한 병행은 특정 군종 중심의 전력 투자를 왜곡해 전체 전력 구조의 불균형을 초래할 뿐이다.

외교적 불확실성도 심각하다. 정부는 미국과의 협의를 낙관하지만, 원자로 연료 조달 등 핵심 쟁점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미국이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지원했더라도 우리나라에 똑같은 수준의 협력을 제공할지는 미지수다. 워싱턴에는 한반도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이 여전하다. 원자력협정 개정은 미국의 비확산 전략과 직결된 사안이다. 구체적 합의 이전에 ‘10년 내 진수’를 공언한 것은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스스로 제한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주변국 안보 환경에 미칠 파장도 크다. 북한은 한국의 원잠 추진을 자신들의 핵·미사일 고도화를 정당화하는 선전 논리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동북아 군비 경쟁 심화 차원에서 강한 경계심을 드러낼 것이다. 결과적으로 원잠 배치 전에 주변국의 군사적 대응을 자극해 역내 긴장과 안보 비용만 증가시키게 될 수 있다.

원잠은 장기적으로 우리 해군의 전략적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충분한 검토 없이 정치적 구호와 속도전에 기대어 추진될 경우 심각한 안보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군사력은 치밀한 예산 설계와 현실적 외교, 지속가능한 국력의 토대 위에서만 구축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리한 속도전이 아니라 냉철한 우선순위 조정과 전략적 속도 조절이다. 철저한 현실 점검이 선행돼야만 안보 공백을 막을 수 있다.

박기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연구원, 前 미8군 장차작전처 WMD 계획장교
박기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연구원, 前 미8군 장차작전처 WMD 계획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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