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권 논설위원
표 줄 후보 없는 비호감 6·3선거
與 면죄부 野 생명줄 될까 고민
적대적 공생 더이상 용납 안 돼
양당 내부에서 붕괴 조짐 보여
英도 100년 정치 체제 무너져
투표로 위임한 권력 회수해야
6·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선 사전투표(29∼30일)가 실시되고, 본투표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지만, 마음을 못 정한 유권자가 많다. 투표를 포기하거나 거부하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기본 7장, 국회의원 선거가 있으면 8장에 기표해야 하는데, 어느 후보가 어느 선거에 출마했는지 파악조차 힘들 정도로 후보가 많기도 하지만, 찍고 싶은 후보와 정당이 없는 비호감 선거인 탓이 크다. 여당 후보들은 폭력 전과, 금품수수 의혹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현역 광역단체장 11명 전원이 출마한 야당 후보는 식상하다. 부동·무당층 비율이 6개월 전과 비슷한 20%대 중반에서 줄지 않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1년 만에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지역 일꾼을 뽑지만, 정권 중간평가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내란 세력 척결을 주장하며 60%대 지지율을 기록 중인 이 대통령을 앞세워 국정 안정론을 펴는 까닭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조작기소 특검법이 이 대통령 무죄 만들기 법이라며 독재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주당에 표를 주면 입법과 국정 운영 폭주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 더욱더 권력에 취한 오만함을 보일 것 같고, 국민의힘을 택하면 야당 역할을 못 하는 무능한 보수 정당의 생명줄을 연장하는 일이 될까 고민하는 딜레마 선거다.
한국갤럽이 2016년 1월부터 2026년 5월까지 10년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유권자 이념 성향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보수적(매우+약간)’ 성향이 31%에서 28%로 3%포인트 줄었고, ‘중도적’ 성향은 44%에서 46%로 2%포인트, ‘진보적(매우+약간)’ 성향은 25%에서 26%로 1%포인트 늘었을 뿐이다. 의미를 찾기 힘든 변화다. 그러나 정치 지형은 확 바뀌었다.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민주당(123석),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122석)은 의석수가 거의 같았지만, 2024년 제22대 총선에선 민주당(위성비례정당 합산) 175석, 조국혁신당 12석 등 진보는 3분의 2에 육박하는 의석을 차지했다. 보수는 국민의힘(〃) 108석에 개혁신당 3석에 불과했다. 앞선 제21대 총선 때도 진보가 보수를 압도했다.
이념 지형은 그대로인데, 정치권력은 진보가 장악했다. 중도 성향 정당은 사라졌다. 보수가 행정 권력을 확보하자 의회 권력을 차지한 진보와 격렬한 싸움이 시작됐다. 정치는 극단적 양극화와 승자독식 구조로 퇴행했다. 잘하려는 경쟁이 아니라 상대의 실책과 무능을 부각해 반사이익을 얻는 적대적 공생 관계가 구축됐다. 이런 구조를 지탱하기 위해선 강경파가 필요했고, 강경파의 힘은 갈수록 커졌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침묵하는 다수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과 조선일보의 ‘한국 사회의 불평등 및 갈등’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나를 대표하는 정당이 없다’는 응답이 51%로, ‘대표하는 정당이 있다’는 답변 17%보다 3배로 많았다. 중도층은 57%가 없다고 응답했다. ‘새로운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45%에 달했다. 정당이 나를 대표하지 않는데, 그런 정당에 투표할 유권자가 어디 있겠는가.
왜곡된 정치 구조는 유지할 수도, 유지돼서도 안 된다. 공고했던 기득권 양당 체제가 내부에서부터 무너질 조짐을 보인다. 대리기사비 제공 문제로 12시간 만에 제명된 여당 출신 광역단체장은 “당 대표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며 무소속 출마해 여당 텃밭을 위협하고 있다. 윤어게인 세력에 축출당한 야당의 전 대표 역시 보수 재건을 외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공천 부조리로 낙천한 여야 현역 단체장과 지방 의원들이 유권자의 직접 판단을 받겠다며 당을 바꾸거나 무소속으로 대거 출마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이외의 선택지가 생긴 것이다.
이달 초 치러진 영국 지방선거에서 2석에 불과한 개혁당이 영국 정치를 양분해온 노동당과 보수당의 100년 아성을 무너뜨렸다. 그런 이변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인공지능(AI) 시대에 급변하는 사회의 정치는 이전과 다르다. “투표는 단순히 사람을 고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이다. ‘소시오패스적’ 정치판을 응징하고, 정치권력을 회수할 때다. 방법은 투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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