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경제부 차장
1920년대의 흥청대는 미국 뉴욕. 주식과 투기로 부를 쌓아 올린 벼락부자들이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대저택을 가득 메운다. 매일 파티가 열리는 부자 동네 저편에는 ‘재의 계곡’의 자동차 정비소가 자리 잡고 있다. 지독하리만큼 성실하게 일하지만, 부자들의 고급 자동차는 끝내 소유할 수 없었던 한 남자가 그곳에 있다. 아내마저 부유한 유부남과 바람이 나버리자 분노와 박탈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 화려한 폭죽에 가린, 개츠비보다 더 비극적인 조연, 조지 윌슨의 이야기다.
벼락부자들의 파티는 오늘날 한국에서도 한창이다. 송파구 아파트값이 10억 원 넘게 뛰었다거나, 주식에 넣어둔 1억 원이 몇 배로 불어났다는 이야기가 꼬리를 문다. 한때 같은 출발선에 있었던 동료들은 어느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앞질러 있다. 삼성전자 성과급 6억 원이 아무렇지도 않게 신문·방송을 도배하는 세상. 누군가 경제 성장에 올라타 온기를 누리는 동안, 묵묵히 제자리를 지킨 ‘조지 윌슨’들은 더 아래로 미끄러지고 있다.
서점과 유튜브에선 여전히 ‘성실히 일하고 아껴라’ ‘사소한 절약이 장밋빛 미래를 만든다’는 조언이 쏟아진다.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잡아야 오늘을 버텨낼 수 있다는 듯이. 그러나 더 오래, 더 혹독한 환경에서 일한 보상의 격차는 갈수록 아득하게 벌어지고 있다. 상위 20%는 월 1237만8000원(국가데이터처 2026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을 벌어들이는 반면, 하위 20%의 월수입은 117만 원에 불과했다. 상대적 박탈감이 기분 탓이라거나 조바심 때문이라는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아무리 ‘노오력’해도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열심히 살아도 돌아오는 건 없다는 경험이 쌓일수록 사회 저변의 체념과 분노는 더 커질 것이다. 본업보다 주식과 코인에 몰두하거나, 중소기업은 일단 피하고 봐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자 지혜가 돼 가고 있다. 갈수록 아이들에게 ‘일하는 가치’를 말해주는 일이 버거워지는 사회. 여당 대표가 대다수 임금 근로자의 박탈감은 외면한 채 “이재명 정부 출범 이래 동학개미들이 평균적으로 3배 부자가 됐다”며 표를 호소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나라.
양극화가 개선되지 않는 것은 정부가 분배보다는 성장 위주의 정책을 펴온 영향이 크다. 고도 성장기를 지난 한국 경제의 정체기가 길어질수록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성장’을 전면에 내걸었다. 최근 반도체 호황을 맞아 성장률이 다시 꿈틀대는데도 분배보다 성장에 방점을 둔 관성은 여전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제대로 된 양극화 해소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당신의 자산을 불려 드립니다’ 같은 증권사 광고 뺨치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거나, 잠깐 돈을 나눠주는 선심성 공약만 난무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혼탁한 선거 국면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주식, 성과급 같은 화두가 사회를 흔드는 동안 정치권은 한발 물러나 선거용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었다. 성장의 과실이 사회 전체 복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 여야, 산업계와 노동계가 함께할 수 있는 공론장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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