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원 지음 | 북이랑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현대전은 ‘인지전’
인간의 뇌는 ‘잘 짜여진 이야기’에 더 설득
“인지전 원리 알고 스스로의 편향과 반응 파악해야”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뉴스 피드를 스크롤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전장 안에 있다. 총알도, 폭탄도 없지만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판단을 흐리고, 감정을 자극하고, 행동을 유도하려 한다….
국제정치이론과 중국 대외관계 전문가인 류동원 국방대 명예교수는 최근에 발간한 저서 ‘마음을 향한 전쟁’을 통해 “현대전의 핵심 전장은 인간의 마음”이라고 역설한다.
“19세기에는 누구의 군대가 이기느냐가 문제였지만, 오늘날에는 누구의 이야기가 이기느냐가 문제다.”
지난해 별세한 국제정치학계의 석학 조셉 나이의 말처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최근 전쟁에서 전장은 물리적 전장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틱톡과 텔레그램, 유튜브와 엑스를 무대로 한 인지전이 동시에 벌어졌다. 이 전쟁들은 현대의 갈등이 물리적 군사력의 충돌을 넘어 “무엇이 진실인가”, “누가 정당한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를 둘러싼 인식의 전쟁임을 보여줬다.
저자는 이 같은 현상이 가짜뉴스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지과학, 신경과학, 인공지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태어난 새로운 전쟁의 형태라고 진단한다.
1950년대 인지혁명은 “인간의 마음은 계산 가능한 정보처리 체계”라는 혁명적 발상을 낳았다. 이 생각은 컴퓨터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디지털 공간이라는 새로운 전투의 무대를 만들어냈다. 1980~1990년대 뇌 영상 기술의 발전은 두뇌 자체를 연구 대상으로 끌어들였고, 21세기 인공지능(AI)과 딥러닝의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인간의 뇌와 마음은 공격과 방어가 오가는 실제 전장으로 탈바꿈했다.
심리전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정보전이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는 단계라면, 인지전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결정하는가’ 그 사고 과정 자체, 개인과 집단의 의식과 무의식 모두를 바꾸는 것이 목적이다.
저자는 인지과학과 신경과학의 최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 자신의 인지적 취약점을 짚어낸다.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사람의 뇌는 빠른 판단을 위해 ‘지름길’을 사용한다는 휴리스틱의 개념이다. 확증 편향, 가용성 휴리스틱, 손실 회피와 같은 특성들은 인지전에 약한 지점이다.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게 사고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정보 환경과 감정적 자극, 반복 노출에 의해 생각과 판단이 형성될 수 있다.
인지전에서 공격자들은 허위 정보를 심는다. 이 정보는 우리의 편견과 무의식적 반응을 자극해 합리적 판단 회로를 우회한다. 진실의 일부를 선택적으로 강조하고, 맥락을 재구성하며, 알고리즘을 통해 반복 노출함으로써 사람들 스스로 특정한 결론에 도달하도록 유도한다. 인종, 빈곤, 경찰 폭력처럼 사회의 실제 균열선을 파고들어 분노와 공포를 증폭시키는 방식이 전형적이다.
여기에 SNS의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에코 챔버’와 ‘필터 버블’이 더해진다. 사용자는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정보만 보게 되고, 반대 시각은 점점 차단된다.
내러티브는 현대 인지전에서 강력한 무기다. 인지심리학자 제롬 브루너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논리적·과학적 사고와 내러티브적 사고, 두 가지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한다. 실제로 두 가지 방식 중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보다 잘 구성된 이야기가 더 설득력을 얻는 경우도 많다. 현대의 인지전은 이 원리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인간의 감정과 기억, 정체성과 세계관을 직접 표적으로 삼는다.
‘무기화된 내러티브’는 허위정보와 SNS를 결합해 적의 정체성과 제도, 문명 자체를 흔들어 놓는다. 저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침략자로 묘사하며 국제 여론을 분열시키려 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며, 내러티브 전쟁의 실제와 위험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인지전이 이미 현실이며,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잠재적 표적이 된다고 경고한다. 극단적인 형태의 인지전은 사회 전체를 양극화하고 분열시켜, 무력이나 강압 없이도 한 사회의 집단적 저항 의지를 무너뜨릴 수 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인지영역을 전쟁의 여섯 번째 영역으로 논의하기 시작하고, 중국이 인지영역 작전을 핵심 군사 개념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것도 이 위협의 심각성 때문이다.
저자는 인지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원리를 아는 것, 내가 어떤 편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지를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21세기 전장에서 살아남고 민주주의와 사회적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 그렇다. 335쪽, 2만원
박세영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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