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세희의 ‘차이나 스캔’ - 8만개 점포… 저장성 ‘이우 시장’의 변신

 

44년된 소상품 시장… AI·드론 다루는 디지털 센터 개장

‘관제 시스템’ 수십대 모니터, 유통 데이터 한눈에

도시 확장하고 자동화 허브항… 글로벌 복합도시 ‘날개’

지난달 26일 중국 저장성 이우 6세대 시장에 입점한 한 휴머노이드 로봇 판매점에서 방문객들이 로봇 시연 장면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지난달 26일 중국 저장성 이우 6세대 시장에 입점한 한 휴머노이드 로봇 판매점에서 방문객들이 로봇 시연 장면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이우=글·사진 박세희 특파원

“상얼다이(商二代), 촹얼다이(創二代)를 아시나요? 상인, 창업가인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라는 뜻입니다. 이우(義烏)의 젊은 상인들은 대다수가 상얼다이, 촹얼다이죠. 부모님 세대가 단추, 액세서리 등을 팔았다면 우리는 로봇, 드론을 팝니다.”

세계 최대의 소상품 시장인 중국 저장(浙江)성 이우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의류 잡화와 완구, 액세서리, 소형 가전 등을 취급해온 이곳에 로봇, 드론 등 첨단 기기를 판매하는 건물이 새로 생겨나면서다. ‘글로벌 디지털 무역 센터’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10월 문을 연 이우의 6세대 시장(六區) 등을 지난달 26일 둘러봤다.

제품 수출 현황 통계 등을 나타내는 대형 모니터를 살펴보고 있는 방문객들의 모습.
제품 수출 현황 통계 등을 나타내는 대형 모니터를 살펴보고 있는 방문객들의 모습.

◇잡화를 뛰어넘어 첨단기술 시장으로= 이우 6세대 시장 4층에 위치한 스마트 장비 및 첨단 기술 구역에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포함해 드론, 인공지능(AI) 로봇 등을 다루는 첨단 기술 기업 200여 개사가 대규모로 집결해 있다. 로봇 한두 대만 진열해 두고 파는 일반적인 소매점이 아니라, 바이어 상담을 위한 플래그십 쇼룸 형태로 운영된다. 시장은 이제 막 영업을 시작한 곳답게 곳곳에 개업 축하 화환들이 눈에 띄었다.

센터 관계자는 “이곳의 사업가들은 기존 사업가들과 비교해 훨씬 젊다”면서 “52% 이상이 상얼다이나 촹얼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본인 역시 부모님이 이우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다며 “우리의 경우, 무역 분야에서만큼은 다른 이들에 비해 확실히 더 뛰어난 상업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새로운 트렌드나 신기술을 훨씬 잘 받아들이기에 첨단 기기 사업 분야로 많이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 자체의 디지털 인프라도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센터 내에 마련된 수십 대의 대형 모니터는 일종의 디지털 무역 관제 시스템으로, AI를 활용해 국가별 제품 수출 현황 통계를 비롯해 물류 유통 데이터를 전 과정에 걸쳐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일부 국가들의 물류 창고도 실시간 모니터를 통해 지켜볼 수 있었다.

관계자는 “센터 내 상인들을 위한 별도의 인터넷망 서비스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선 외부 네트워크에 접속할 때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우회해야 하지만 이곳은 별도의 크로스보더 전용선을 구축해 VPN 없이도 해외 플랫폼을 통한 라이브 방송이 가능하다. AI를 활용한 디지털 점원 서비스 확충에도 적극적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한 액세서리 가게에 설치된 AI 디지털 점원은 한국어로 상품 정보를 안내하고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수행했다.

지난달 26일 외국 바이어가 매장에 전시된 드론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달 26일 외국 바이어가 매장에 전시된 드론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닭털과 사탕’에서 시작된 세계 최대 소상품 시장= 이우 시장은 1982년에 조성된 1세대 시장을 시작으로 지난해 개장한 6세대 시장에 이르기까지 이우 시내 중심부 800만㎡ 규모로 확장됐다. 8만 개 이상의 점포가 입점해 있으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영업하는 이곳에서 점포마다 3분씩 머문다면 전부를 돌아보는 데 1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이우에 없으면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온갖 물건이 모이는 곳으로 세계 최대의 소상품 시장, 세계 소상품의 수도, 세계의 슈퍼마켓 등 다양한 별칭으로 불린다.

이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현은 ‘지마오환탕(계毛換糖)’이다. 닭털을 사탕과 맞바꾼다는 뜻으로, 토질이 좋지 않아 먹고살기 힘든 가난한 시골이었던 옛날, 이우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사탕수수로 만든 사탕을 메고 이웃 마을을 다니며 집집마다 버리는 닭털을 수거했고 이를 먼지떨이 등으로 가공해 판매했다. 이후 거래 품목은 사탕과 닭털에서 바늘, 단추, 실, 신발끈 등 각종 생활잡화로 확대됐고, 상인들이 길거리에 모여 노점을 열면서 오늘날 이우 시장의 기반이 형성됐다. 현재 이우에서 지마오환탕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상인정신’이자 ‘어떤 어려움도 끈기로 극복하는 개척정신’을 상징하는 말로 통한다. 과거 저장성과 상하이(上海)시 당서기를 지냈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재임 시절 이우를 12차례 방문하며 지원했다. 주석 신분인 2023년에도 이우 시장을 직접 찾았다. 지난 4월엔 ‘중요 지시’를 통해 “이우의 소상품 산업이 대규모 시장으로 성장하고 산업으로 발전한 것은 지역 실정에 맞는 현(縣) 단위 경제 발전의 성공적 사례”라고 평가하며 “이우의 발전 경험을 더욱 잘 정리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시 확장 나선 이우… 신도시 건설하고 국제허브항 짓고= 중앙정부의 지원 속에 이우 시는 최근 도시 확장 작업에 나섰다. 대표적인 게 ‘솽장후신취(雙江湖新區)’다. 솽장후신취는 이우가 기존의 빽빽한 도매시장 중심 도시에서 벗어나 미래형 글로벌 복합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 개발 중인 신도시 프로젝트로, 거대한 인공호수와 함께 그 인근 65㎢ 규모로 조성된다. 솽장후그룹(雙江湖集團)의 리청창(李城牆) 부사장은 “이우는 세계 최대의 소상품 집산지로, 230여 개 국가·지역과 무역 관계를 맺고 있으며 도시 인구는 350만 명에 달한다”며 “급격한 성장으로 도시 수용 능력이 한계에 다다른 만큼 더 큰 옷으로 갈아입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솽장후신취는 이우를 단순한 잡화도시를 넘어 AI 기술과 글로벌 금융이 결합된 친환경 수변 미래도시로 도약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개항한 이우 쑤시(蘇溪) 국제허브항은 물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곳은 바다가 없는 내륙 도시인 이우 시가 해상 물류 주도권 확보를 위해 건설한 첨단 드라이 포트(내륙 항구)로, 세계 최대 물동량을 처리하는 해상 항구인 닝보저우산(寧波舟山)항과 이우를 잇는 핵심 거점이다. 이우허브항유한공사의 자오젠민(趙建民) 사장은 “28억 위안(약 6264억 원)이 투자된 허브항은 중국 유일의 자동화 항구”라면서 “원격 자동화 크레인과 자율주행 트럭 도입으로 과거 5시간 이상 걸리던 열차 적재·하역 작업을 현재는 2시간 안팎으로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전체 63만㎡에 달하는 항구 부지지만 자동화 시스템 덕분에 상주 인력은 120여 명에 불과하다. 이날 찾은 항구에서는 운전자 없이 움직이는 자율주행 트럭들이 줄지어 오가며 컨테이너를 운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이우의 제품 통관은 인근 상하이나 닝보 등을 거쳐 이뤄졌지만 지난해 6월 허브항이 개항하면서 통관 속도가 크게 빨라졌고 물동량도 증가했다고 자오 사장은 말했다. 허브항은 현재 66만 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인 물동량 처리 규모를 2035년 115만 TEU, 2045년 166만 TEU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박세희 특파원
박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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