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문10답 - 장보고 N사업
北, SLBM 실전배치 선언 ‘위협’
러와 기술협력 가능성도 거론속
한국형 원잠은 국가생존의 방패
정부 “10년 내 1번함 진수 목표”
재래식 무기 탑재… 핵무기 무관
佛처럼 20% 저농축 우라늄 활용
탐지·추적·응징적 억제 핵심전력
전문가 “6척 체계 돼야 순환운용”
핵연료, 美와 별도협정 필요하고
국내 건조도 트럼프 설득이 난제
지난해 10월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의 요청을 수용함으로써 비닉(秘匿·대외비) 사업으로 추진되던 한국형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K-SSN) 구상이 본격화됐다. 보름 뒤 발표된 한·미 공동설명자료(JFS)는 미국이 K-SSN 건조를 승인했고 연료조달 방안을 포함한 관련 요건을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미래국방전략위원회에서 2030년대 중반까지 K-SSN 1번함을 진수하는 ‘장보고 N사업’을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 국내 건조계획에 대한 미국 동의와 천문학적 예산 확보, 핵연료 확보 등에 대한 협상 진척이 없다. 2일 미국과 실무협상이 시작됐지만 미 의회를 설득하고, 국제사회 의구심을 관리하고, 산업적 이해관계를 맞교환하는 등 총력전을 전개해야 풀 수 있는 과제가 대부분이다. 국내 최고 잠수함 전문가 문근식 한양대 교수의 도움을 받아 K-SSN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1. 장보고 N 프로젝트란
안 장관은 지난달 26일 한국의 원잠개발 사업을 ‘장보고 N사업’으로 명명하고 “한국 최초 잠수함 장보고함의 정신을 계승한 차세대 모델(Next generation)로, 핵추진(Nuclear powered) 방식을 적용하고, 첨단 신기술(Neo technology)을 집약한 한국형 잠수함을 구축하겠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우리가 개발하는 원잠은 핵무기를 탑재하는 전략핵잠수함(SSBN)이 아니라 재래식 무기를 운용하는 원잠”이라며 “잠수함의 작전 지속능력과 생존성을 향상시켜 해양 안보 역량을 강화해 현재보다 한 차원 높은 대북 억제력을 갖추는 데 있으며 핵무기 보유·운용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2. K-SSN 왜 지금 필요한가
북한은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다양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전배치를 선언했을 뿐 아니라 2025년 말 자칭 ‘핵동력 전략유도탄잠수함(SSBN)’ 건조 현장을 공개했다. 정부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는 데 실질적 역할을 담당하고, ‘응징적 억제’ 및 ‘수중 킬 체인’(Kill Chain)을 구현할 전략무기가 필요하다며 원잠개발을 결정했다. 한국이 원잠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SLBM 전력화와 탐지 불연속성 문제 △중국·일본의 대양 해군화 및 서해에서의 그레이존(gray zone) 압박 △한미동맹 구조 변화 속 전략적 자율성 확보 △해양경제·산업·국가의 미래가 결합된 생존 등 4가지 때문이다.
3. K-SSN은 국가 생존 위한 방패
해양 선진국 가운데 원잠 없는 나라는 거의 없다. 북한은 SLBM 실전 배치와 원잠 공개를 통해 해상 핵전력 강화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러시아와의 기술협력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중국은 094·095형 원잠을 대량 건조하는 동시에 3척의 항공모함 전력과 결합해 원양 작전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은 최신 디젤잠수함 전력과 경항모 체제를 구축하며 수중전 우위를 둘러싼 경쟁에 적극 나서고 있다. 러시아 역시 야센급 원잠을 중심으로 수중·해상에서 전략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만 재래식(디젤) 잠수함이란 한계에 갇혀 지낸다면 억제력 균형은 무너지고 한반도 안보는 구조적으로 위험에 놓이게 된다. K-SSN은 강력한 공격 무기체계인 동시에 전쟁 방지 억제자산이자 국가 생존과 전략을 지탱하는 방패인 셈이다.
4. 러시아의 북한 원잠개발 지원
미국 북한전문매체 38노스는 최근 러시아와 북한 간 핵협력을 보여주는 핵심 정황이 SLBM을 탑재하는 SSBN 시스템 이전 가능성에서 나타난다고 보도했다. 38노스는 러시아가 핵반응로 2∼3기를 북한에 이전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와 냉각시스템, 반응로 노심 등 핵심 부품을 이전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고 밝혔다. 어떤 경우든 북한 SSBN 배치 일정을 여러 해 단축하게 돼 한반도와 대만해협에서 한·미·일의 대잠수함 작전에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38노스는 배수량 8700t으로 추산되는 북한 원잠이 러시아 아쿨라급과 가장 유사하다며 180∼190㎿급 OK-650(OK-9BM) 계열 가압경수로 완제품이나 부품이 북한에 이전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38노스는 원잠을 운용하면 고농축 우라늄 수요가 증가한다면서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신설, 확장하는 이유의 하나라고 분석했다.
5. K-SSN 몇 척 건조하나
통상 잠수함 4척 체계는 최소한의 억제력은 만들 수 있지만 정비·훈련·승조원 순환을 감안하면 상시 전개 가능한 함정 수가 제한된다. 문 교수는 “지속적인 순환 운용이 가능하려면 최소 6척 체계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6척 체계에서 원잠은 3개 층으로 순환 운용된다. 먼저 2척은 정비·훈련 단계로 원자로 점검, 선체 정비, 승조원 숙련도 회복을 담당하며 다음 작전 투입을 준비한다. 다른 2척은 대기·준비 전력으로 유사시 즉시 작전해역 전개 상태를 유지한다. 나머지 2척은 상시 작전전력으로 배치돼 한반도 주변과 주요 해역에서 초계·감시·추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6. K-SSN 배수량은
대형원잠은 대양작전을 전제로 할 경우 합리적 선택이지만 근해에서는 과도한 크기가 기동성을 제약하고 은밀성을 유지하는 데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 반대로 소형원잠은 초기에는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크기가 줄어들수록 원자로 출력 여유가 감소하고 장기 작전능력이 약화된다. 문 교수는 “K-SSN은 배수량 약 6000∼7000t급 중형이 적절하다”며 “영국 아스튜트급과 프랑스의 시프랑급(바라쿠다급)과 같은 범주로 장기 작전능력, 정숙성, 무장 여유, 승조원 생활조건 등 4가지 요소를 충족시켜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중 감시 자산이 밀집한 한국 주변 해역에서 K-SSN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수일에서 수주에 걸쳐 안정적으로 정숙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잠수함이다. 이와 함께 K-SSN은 대량의 탄도미사일을 싣는 플랫폼이 아니라 상대 수중 전략자산을 추적·관리하고 위기 상황에서 상대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억제 전력이다. 따라서 무장 중심은 어뢰가 되고 미사일은 업무 범위를 확장하는 보조 수단으로 삼는 것이 효과적이다.
7. K-SSN 핵연료는 왜 저농축인가
원잠에 대한 대표적 오해가 ‘고농축 핵연료를 쓰면 더 강하고 빠르다’는 인식이다. 일각에서 원잠은 고농축우라늄(HEU)이 필수라고 주장하지만 비핵무기국인 한국에 이 선택은 기술적 장점과 함께 외교적 부담, 국제적 신뢰 훼손이라는 비용을 동시에 수반한다. K-SSN의 출발점은 국제규범 준수와 신뢰 축적이다. 농축도 20% 미만 저농축우라늄(LEU) 기반 원자로로도 작전 지속성을 충분히 구현 가능하다. 프랑스 원잠이 이 방식을 택하고 있다. LEU의 가장 큰 장점은 ‘비확산 친화성’이다. 핵무기 전용 가능성이 낮아 국제적 수용성이 크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관리 아래 비교적 투명한 연료주기 운영이 가능하다. 반면 에너지 밀도가 낮아 동일 출력을 확보하려면 원자로를 더 크게 설계하고, 대략 10∼15년 주기로 연료를 교체해야 한다.
8. 컨트롤타워 등 사업단 구성
장보고 N사업이 성공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대통령실 직속 ‘핵추진잠수함 사업단’(PMO) 설치다. 이 조직은 국가 전략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 외교·안보·산업·예산·과학기술·안전 규제를 유기적으로 통합 조정할 수 있어야 독자적 원잠 보유국이라는 목표에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세계 주요 핵잠수함 보유국들도 대부분 국가 차원의 국책사업 형태로 추진했다. 미국·영국·러시아·프랑스·중국 모두 최고지도부 차원의 통합지휘체계 아래 국가 역량을 총동원했다. 반면 해군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던 인도는 원자로 개발, 조선기술, 안전체계, 핵연료 관리, 부처 간 조정에서 반복적인 지연·혼선을 겪었다. 원잠은 단순히 잠수함 선체만 건조하는 사업이 아니다. 원자력 기술, 핵연료 확보, 안전 규제, 조선산업, 소재·부품 산업, 외교 협상, 국제 비확산 체제 대응까지 결합된 복합 국가시스템 사업이다. 따라서 산업통상부·외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국방부·원자력안전위원회·조선업계·학계·연구기관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현재와 같은 군 중심 구조만으로는 이를 총괄 조정하기 어렵다.
9. 미국과 협상 과제
원잠에서 사용될 핵연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국 원자력법에 따라 양국 간 별도 협정을 맺어야 한다. 한국은 농축률 20% 이하 우라늄을 프랑스, 영국, 러시아, 중국 등에서 도입해왔는데 ‘군함 추진용 핵물질’은 별도 협의가 필요하다. 또 다른 과제는 한국 내 건조에 대한 미국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JFS에는 원잠 건조 장소가 언급되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 건조를 공언한 트럼프 대통령을 어떻게 설득할지가 숙제다.
10. 산업적 파급효과
원잠개발에서 발생할 산업적 파급효과도 주목된다. 선박용 소형원자로 기술 개발은 군사 분야를 넘어 미래 민간산업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향후 글로벌 친환경 해운시장에서 원자력 추진 상선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함정용 원자로 기술은 조선·에너지·원자력 산업 전체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경쟁력을 보유한 한국에 원잠 사업은 단순 무기체계 개발이 아니라 미래 국가 성장동력 확보와도 직결된다. 전문가들은 장보고 N사업의 성공을 위해 먼저 10년 단위 국가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1단계로 특별법 제정과 범정부 추진체계 구축, 핵연료 확보 기반 마련 및 기본설계 완성을 시작으로 2단계 시제함 건조 착수와 후속함 건조계획 수립, 3단계는 시제함 시운전 및 전력화, 마지막 단계는 후속함 양산과 산업 생태계 확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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